시읽는기쁨

바짝 붙어서다 / 김사인

샌. 2018. 1. 24. 15:18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 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씽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맨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 바짝 붙어서다 / 김사인

 

 

인간 세상에 가난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하다. 돈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 이런 차이를 좁히라고 나라가 있는 게 아닌가. 탐욕은 제도적으로 적절히 제어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모든 방안을 궁리해 봐야 한다. 연민만으로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날이 추워졌다. 내 따뜻한 거처가 죄스럽게 느껴지는 2018년의 한겨울이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 노래 / 예이츠  (0) 2018.02.04
찾습니다 / 이영혜  (0) 2018.01.30
응 / 문정희  (0) 2018.01.19
오징어와 검복 / 백석  (0) 2018.01.13
송년회 / 황인숙  (0) 201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