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 사람인 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한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쉬면서?
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가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 번뿐인 걸까요?
무슨 이유로 바로 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행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 여기에 없었던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천인天人도 아니고, 강장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 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 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
왜 하필 옆자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도 아닌 바로 이곳에 앉아서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릉대는 성난 강아지처럼.
- 경이로움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칸트는 말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움과 경외로 나를 떨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머리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 법칙이다." 그렇다. 우주 속 지구라는 별에 의식 있는 존재로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경이는 없다. 우주의 입자가 수없는 이합집산을 거듭하여 현재 내 몸을 이루고 있다. 수 억도 열로 달구어지다가 차가운 암흑의 공간에서 헤매기도 했다. 어떤 인연이 이 꼴을 만든 것일까? 마음은 어떻게 작동되고, 기억은 어디에 저장되는가? 꿈은 어디서 오는 걸까? 왜 나일까?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답이 없는 질문은 우리를 고개 숙이게 만든다. 그런데 이 시의 끝 행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릉대는 성난 강아지'는 누구일까? 잔잔히 흐르던 물길이 돌부리를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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