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것을 도둑맞은 것 같다
거친 숨 몰아쉬며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이 다녀간 것일까
아무것도 없다
공허뿐이라고
그냥 가 보는 거라고 말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구구구 모이 몇 알 주워 먹느라
할퀴며
깃털 뽑히며
두 날개 뭉개졌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고 한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가랑잎도 아닌데
자꾸 떨어져 내리다가
내일은 어디일까
정말 어디를 흔들어야
다시 푸른 음악일까
-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 문정희
지금 내 심정이다. 산다는 게 이렇게 형편없는 줄 몰랐다. 진흙탕에서 버둥대는 느낌이다. 이러면서 생은 끝나갈 것이다. 뭘 하며 산 거지, 돌아보면 공허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라고 물으니 더 나락이다. 어디에도 구원이 없다는 걸 시인도 모를 리 없다. 밧줄은 썩어가는데 한 줌 단맛에 취해 대롱거리는 새앙쥐 한 마리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팽나무가 쓰러지셨다 / 이재무 (0) | 2018.06.27 |
---|---|
전원락(田園樂) / 왕유 (0) | 2018.06.16 |
허수아비 / 조오현 (0) | 2018.05.31 |
경이로움 / 쉼보르스카 (0) | 2018.05.24 |
한동안 그럴 것이다 / 윤제림 (0) | 2018.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