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밤골과의 인연

샌. 2019. 4. 27. 21:40

나에게는 세 가지 마음의 짐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밤골이다. 끝맺음을 잘하고 나오지 못해서 밤골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꿈에 밤골이 나타나면 대개가 악몽인데,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곳을 떠난 지 12년이 되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옛말이 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지만, 쉽사리 버리기 어려운 인연도 있다. '유연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 무연대면불상봉(無緣對面不相逢)' - 인연이 있으면 천 리를 떨어져도 서로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 오늘, 언젠가는 매듭을 풀어야 할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아니,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지 모른다. 우연이 무수히 겹쳐지면 필연이 된다. 그래서 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이다. 잊으려고 쑤셔았던 과거가 주르륵 펼쳐졌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밤골 앞을 지나갔다. 여기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곳이다. 이젠 이곳과, 여기 사람과 화해를 할 수 있을까? 해원굿을 하듯 풀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러할 수 있기를 빈다.

오전에 J 수녀님에게서 연락이 와서 여주에 내려갔다. 같이 점심을 하고 봄이 무르익는 황학산수목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수목원이 마련해준 소실점이 막바지에 있었다. 산다는 건 기이하면서 또한 막막하고 허전하다. 인간은 결국 외로운 존재로 귀결된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생명붙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아주 드물게 인생에 대해 신비와 경외감을 느끼는 것, 그것만이 인간의 특권인 것 같다. 그러므로 모른다는 게 남아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나는 모른다. 악연(惡緣)이나 선연(善緣)이 존재하는지. 너와 나의 관계, 이 모든 게 환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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