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17]

샌. 2021. 7. 5. 09:56

예수께서 집으로 돌아오시니 군중이 다시 모여드는 바람에 일행은 먹을 겨를도 없을 지경이었다. 예수의 친척들은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들러 나섰다. 사실 그분이 미쳤다고들 말하고 있었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사들은 "그가 베엘제불에 사로잡혔다"느니, "귀신 두목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낸다"느니 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습니까? 한 나라가 갈라지면 그 나라는 지탱할 수 없고 한 집안이 갈라지면 그 집안은 지탱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지면 지탱할 수 없고 끝장이 납니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털 수 없습니다. 묶어 놓아야 그 집을 털게 될 것입니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짓거나 신성모독을 해도, 그것이 아무리 심한 신성모독이라도, 모두 용서받겠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업을 짊어질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그가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윽고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와서, 밖에서 그분을 불러내려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둘러앉아 있던 군중이 "보십시오, 밖에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찾아오셨군요"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 하시고는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보시오, 이들이 내 어머니요 형제들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이런 이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

 

- 마르코 3, 20-35

 

 

예수에 관한 소문이 고향 마을에도 전해졌다. 예수가 미쳤다느니, 귀신에 사로잡혀 있다느니 하는 좋지 않은 소문이었다. 예수의 이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이에 예수를 만류하려고 어머니와 형제, 친척들이 예수에게 찾아왔다.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다른 형제, 친척과 함께 했다는데 주목한다. 만약 마리아가 신의 계시를 받아 동정녀 잉태라는 체험을 했다면 다른 형제들이나 친척들과 같이 예수를 붙들러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관복음서 중 유일하게 <마르코복음>만 예수의 탄생이나 유년에 대한 서술이 없다. <마르코복음>이 쓰일 시점에서는 아직 마리아 숭배 신앙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일화에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은 나오지 않는다. 이때 요셉은 돌아가셨거나, 노쇠하여 움직이지 못 할 정도였거나, 아니면 예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신뢰하였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크지만 세 번째 경우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의 인격이나 신념의 형성에 요셉의 역할이 상당했었으리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예수를 제일 믿고 후원해준 사람은 요셉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에 등장하지 않는 요셉이 그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사상이나 종교의 선구자들은 혈육으로서의 가정의 울타리를 깨뜨린 사람들이다. 붓다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왕궁을 박차고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미친 놈"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만약 가정에 갇혀 있었다면 이 세상에 깨달음의 빛을 선물하지 못했다. 예수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입니까?"라고 냉정하게 대한다. 그런 결단이 아니라면, 그래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면,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동력을 잃고 말 것이다. 예수라고 자신의 안온한 자리를 지키고 싶지 않았을까. 가업을 잇고 부모를 부양하며 결혼해서 자식의 재롱 속에서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 하느님 나라에 초대하는 거친 광야의 길을 택했다. 그 길에서 혈육으로서의 가족이 어떤 장애가 되는지 예수는 잘 알고 있었으리라. 동시에 제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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