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라 이름한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들, 무엇이라 호명(呼名)해도 다시는 대답하지 않을 것들을 향해 이제 바람이라 불러본다. 바람이여, 내 귀를 멀게 했던 그 가녀린 음성, 격정의 회오리로 몰아쳐와 내 가슴을 울게 했던 그 젖은 목소리는 지금 어디 있는가. 때로는 산들바람에, 때로는 돌개바람에, 아니 때로는 거친 폭풍에 실려 아득히 지평선을 타고 넘던 너의 적막한 뒷모습 그리고 애잔한 범종(梵鐘)소리, 낙엽소리, 내 귀를 난타하던 피아노 건반, 그 광상곡(狂想曲)의 긴 여운, 어느 먼 변경 척박한 들녘에 뿌리내려 민들레, 쑥부쟁이, 개망초 아니면 씀바귀꽃으로 피어났는가. 말해다오. 강물이라 이름한다. 이미 잊혀진 것들, 그래서 무엇이라 아예 호명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이제 강물이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