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너를 찾는다 / 오세영

샌. 2009. 11. 21. 12:46

바람이라 이름한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들,

무엇이라 호명(呼名)해도 다시는 대답하지 않을 것들을 향해

이제 바람이라 불러본다.

바람이여,

내 귀를 멀게 했던 그 가녀린 음성,

격정의 회오리로 몰아쳐와 내 가슴을 울게 했던 그

젖은 목소리는 지금 어디 있는가.

때로는 산들바람에, 때로는 돌개바람에, 아니

때로는 거친 폭풍에 실려

아득히 지평선을 타고 넘던 너의 적막한 뒷모습 그리고

애잔한 범종(梵鐘)소리, 낙엽소리, 내 귀를 난타하던 피아노 건반,

그 광상곡(狂想曲)의 긴 여운,

어느 먼 변경 척박한 들녘에 뿌리내려

민들레, 쑥부쟁이, 개망초 아니면 씀바귀꽃으로 피어났는가.

말해다오.

강물이라 이름한다.

이미 잊혀진 것들,

그래서 무엇이라 아예 호명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이제 강물이라 불러본다.

강물이여,

한 때 내 눈을 멀게 했던 네 뜨거운 시선,

열망의 타오르는 불꽃으로 내 육신을 황홀하게 달구던 그 눈빛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때로는 여울에, 때로는 급류에, 아니 때로는

도도히 밀려가는 홍수에 실려

아득히 수평선을 가물가물 넘어가던 너의

쓸쓸한 이마. 그리고

어디선가 꽃잎이 지는 소리, 파도소리, 철썩이는 잔물결의 여운.

어느 먼 외방의 썰렁한 갯벌에 떠밀려

물을 향해 언제나 귀를 쫑긋 열고 살아야만 하는가.

해파리, 민조개, 백합 아니

온종일 휘파람으로 울다 지친 소라

말해다오.

구름이라 이름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들,

무엇이라 호명해도 다시 이룰 수 없는 형상들을 향해 나는

이제 구름이라 불러본다.

구름이여,

한 때 내 맑은 영혼의 하늘에 푸른 그늘을 드리우던

오색 빛 채운(彩雲),

그 빛나던 무지개는 지금 어디 있는가.

때로는 별빛에 실려, 달빛, 아니 어스름한 어느 저녁 답,

스러지는 한 조각 노을에 실려

아득히 먼 허공으로 희부옇게 사라지던 너의 그 두 빈 어깨 그리고

어디선가 내리치는 마른번개, 스산하게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잔기침소리,

어느 먼 이역의 하늘로 불려가

흩뿌리는 싸락눈, 진눈깨비 아니

동토(凍土)에 떨어져 나뒹구는 우박이 되었는가.

말해다오.

너를 찾는다.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강물이라는, 구름이라는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해 저무는 가을 저녁

찰랑대는 강가의 시든 풀밭에 홀로

망연히 앉아.


- 너를 찾는다 / 오세영


이광덕(李匡德)은 영조 때 대제학을 지낸 명문 사대부다. 어느 해에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변복을 하고 함흥에 잠입했다. 그런데 암행어사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져 비리 조사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광덕은 비밀을 누설한 자가 누구인지 엄하게 조사를 했는데 소문의 진원지는 의외로 기루에서 심부름하는 7세의 소녀였다. 암행어사가 출현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소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소녀가 집에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의복과 신발이 다 해졌으나 손이 희었습니다. 굶주린 걸인이 손이 어찌 깨끗할까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옆의 사람이 옷을 벗어 이를 잡은 뒤에 손이 흰 걸인에게 공손히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치 주인과 종자인 것 같았는데, 손이 흰 사람이 걸인 옷을 입은 것은 변장을 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사가 암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광덕은 소녀의 말을 듣고 그 총명함에 탄복했다. 이름을 물으니 가련(可憐)이라고 했다. 이광덕은 시 한 수를 써서 가련에게 주었다.


'어린아이의 재주가 총명하니 문사라 부를 만하고

옥용이 아리따우니 한 떨기 꽃과 같구나

아직은 봉오리가 열리지 않았으나

만개하면 관북의 진랑(황진이)이 되리라'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이광덕은 여러 벼슬을 전전하다가 소론의 탄핵을 받아 함흥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위리안치형이라 담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작은 초가에서 서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울타리 밖에서 여인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불러서 호통을 치니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리는 소인을 기억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소인 가련이라고 하옵니다.”

“가련이?”

“소인이 어렸을 때 나리께서 함흥에 어사로 오시어 글을 주신 일이 있습니다.”


이광덕은 가련이 내보인 옛날 자신의 글을 보면서 탄복을 했다. 어린 소녀는 이미 중년 여인이 되어 있었으나 그 모습은 화용월태였고 목소리는 은방울이 구르듯 맑고 또렷했다. 가련은 자라 기생이 되었는데 미색이 출중해 많은 사대부로부터 위협과 유혹을 받았으나 오직 이광덕만 그리면서 정조를 지켰다.


“한데 그대가 이곳엔 어인 일인가?”

“소인은 나리를 모시기 위하여 지금까지 기다렸습니다.”

“허허허. 나 같은 사람을 무엇 때문에 기다린다는 말이냐? 그것은 벌써 수십 년 전 일이 아닌가?”

“소인은 이미 나리께 일생을 의탁하겠다고 맹세하였으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옆에서 나리를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대의 뜻은 가상하다만 나는 나라에 죄를 지은 몸이라 여인을 가까이 할 수 없다.”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어찌 더 기다리지 못하겠습니까? 소인은 나리의 죄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가련은 이광덕이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정성껏 뒷바라지를 했다. 둘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눈과 마음으로만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다. 가련은 밝은 밤이면 누대에 올라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노래했다. 그 소리가 간장을 끊을 듯이 애절하여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찾아와 들었다고 한다. 이광덕 또한 퉁소를 꺼내 부니 노래와 퉁소 소리가 더욱 애절했다. 이때 지은 이광덕의 시가 전한다.


'함흥의 여협은 머리에 실이 가득한데

나를 위해 출사표를 높이 부르네

읊다가 세 번 초려를 찾은 곳에 이르면

귀양 온 신하의 눈에 만 줄의 눈물이 흐르네'


그렇게 둘은 육체관계가 없는 순수한 사랑을 나누었다. 서로 바라보기만 하는 기이한 사랑이었다. 이광덕은 몇 년 만에 귀양이 풀려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때에야 처음으로 운우의 기쁨을 나누었다.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합방이었다. 그러나 관북과 관서 지방 기생은 한양으로 데려오지 못한다는 조선시대의 법이 있어 둘은 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둘은 함관령에서 눈물의 이별을 했는데 그것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이었다. 이광덕은 한양에 올라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가련은 이광덕의 제사상을 차린 뒤 소복으로 갈아입고 ‘출사표’를 불렀는데 그 소리가 처량하고 애절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장사를 마친 뒤 가련은 자결을 했고, 함흥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장사를 지내 주었다. 가련의 묘는 함흥의 큰길가에 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에 탄식을 했다. 여러 해 뒤에 어사 박문수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함관여협가련지묘(咸關女俠可憐之墓)’라고 비석을 세워주었다.

----- 이 시와 어울릴지는 모르겠으나 조선시대에 실재했던 한 사랑 얘기를 옮겨 보았다.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지독하다고 해야 하나, 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간절함의 깊이를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아직도 가련의 무덤이 남아 있다면 찾아가 소주 한 잔 올리고 싶다. 언젠가는.....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 원혜빈  (0) 2009.12.01
친구가 / 이시카와 도쿠보쿠  (1) 2009.11.26
학교 / 조성순  (0) 2009.11.15
서울의 예수 / 정호승  (0) 2009.11.09
가을날 / 릴케  (3) 2009.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