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친구가 / 이시카와 도쿠보쿠

샌. 2009. 11. 26. 08:59

친구가 모두 훌륭해 보이는 날엔

 

꽃 사들고 돌아와

 

아내와 즐겼노라

 

이시카와 도쿠보쿠(1886-1912). 26세로 요절한 천재 시인. 짧은 생애동안 세상과 불화하고 가난에 시달리다 폐결핵으로 죽은 불행한 시인. 시인은 요즈음 말로 하면 ‘루저’라고 불렸을까? 아내마저 생활고로 집을 나간 뒤 시인은 자살을 결심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어머니와 아내 역시 시인과 비슷한 시기에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남은 두 딸도 어린 나이에 모두 폐결핵으로 죽는다. 이 시에서는 고단한 현실을 초월하려는 자족의 경지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인생의 본원적인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승화된 정신만으로는 이겨내기 힘든 현실의 벽 같은 것.


이시카와는 짧은 단가(短歌)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긴 일본의 국민시인이다. 시인 백석(白石)도 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본명인 백기행을 이시카와(石川)의 ‘석’(石)자를 넣어 백석으로 개명했다. 친구가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고 빌려준 돈으로 목련꽃을 한 아름 살 정도로 이시카와는 철없는 낭만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러니 식솔들 먹여 살릴 재주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을 터였다. 꽃 사들고 돌아와 아내와 즐겼다는 구절에서 시인의 쓸쓸함과 고독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진다. 그러나 그런 가난과 외로움과 아픔이 만인의 가슴을 울리는 시를 탄생시킨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자살을 하려고 시인은 어느 날 바닷가를 찾았다. 그런데 백사장에 있는 작은 게 한 마리에 정신이 팔려서 게와 노느라 하루해를 보냈다.


동해 바다의 자그마한 갯바위 하얀 백사장

나는 눈물에 젖어

게와 벗하였노라


시인은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돈이 없어 책을 구할 수가 없었다. 헌 책들을 팔아 새 책을 사곤 했는데 나중에는 집에 사전 한 권만 남았다.


책을 사고 싶어, 책을 사고 싶어서

떼 쓸 생각은 아니지만

아내에게 말해보네


어느 날 시인은 늙으신 어머니를 업어본 모양이다. 그때 느낀 애처로움이 이 시로 남아있다.


우스개삼아 엄마를 업었으나

그 너무 가벼움에 눈물겨워

세 발짝도 못 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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