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슈킨

샌. 2009. 12. 5. 08:53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힘든 일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내일에 사는 것

오늘이 슬프다 해도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리고

지나간 것은 언제나 그리워지는 것이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슈킨

 

옛날 이발소에는 돼지 그림에 이 시의 첫 구절이 적힌 액자가 의례 걸려 있었다. 우리 세대라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접한 시가 이것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글귀가 러시아 시인이 쓴 유명한 시의 한 부분인 줄 전혀 몰랐다. 푸슈킨이라는 이름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십대 때는 이 시가 왠지 싫었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너무 값싼 위로를 준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고민하고 고뇌하던 시기, 그런 가치를 최상에 두었던 시기에 이 시는 무척 나약하게 보였을 것이다. 노여워할 때는 당연히 노여워해야 하거늘, 이 시가 전하는 순명과 체념의언어는 청춘에 어울리지 않았다.

 

신파조의 유행가 가사가 어느 날 마음을 치듯이 언제부턴가 이 시도 마음에 감기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이 나이가 되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존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흐르는 강물을 역류하려 애쓴들 수고로움만 더할 뿐이다. 슬픔도 기쁨도 한 순간빛났다가 사라진다. 또한 미래의 즐거움이 현재의 담보가 될 수도 없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리고....

 

지.나.간.것.은.언.제.나.그.리.워.지.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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