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팔십에 여주 당숙은 다신 수술 안 받겠다 선언하고 두 해쯤 더 논에서 살다 돌아갔다 누구는 애통해하고 누구는 대단한 결단이네 평하지만 사실은 무서워서 그랬단다 얼떨결에 한번은 했지만 수술받고 깨어날 때 너무 아프더란다 이건 조카한테만 하는 얘기지만 치과도 안 가본 놈이 선뜻 따라가고 남자들 군대도 멋모를 때 한번 가는 거 아니냐고 얼떨결에 세월만 갔지 나이 먹었다고 다 깊어지는 게 아니더라고 죽을 때는 아마 그럴 거라고 얼떨결에 꼴까닥하고 말 거라고 그렇게 얼떨결에 노래하던 당숙은 내년에 뿌릴 씨앗들 골라 놓고 앞뒤 마당도 싹싹 비질해 놓고 그 길로 빈방에 들어 깊은 잠 되었다 - 얼떨결에 / 고증식 올 한 해도 꼬리에 다다랐다. 돌아보니 일 년이 얼떨결에 후딱 지나간 것 같다. 사람의 생애도 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