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영 2

혼자만 착하믄 뭐하노 / 박제영

착하다 사람 좋다 그기 다 욕인기라 사람 알로 보고 하는 말인 기라 겉으로는 사람 좋다 착하다 하믄서 속으로는 저 축구(芻狗) 저 등신 그러는 거다 우리 강생이 등신이 뭔 줄 아나 제사 때 쓰고 버리는 짚강생이가 바로 등신인 기라 사람 축에도 못 끼고 귀신 축에도 못 끼는 니 할배가 그런 등신이었니라 천하제일로 착한 등신이었니라 세상에 두억시니가 천지삐까린데 지 혼자 착하믄 뭐하노 니는 그리 물러 터지면 안 되니라 사람 구실을 하려믄 자고로 모질고 독해야 하니라 길게 말할 게 뭐 있노 우리 강생이 그저 할배랑 반대로만 살면 되니라 하모 그라믄 되니라! - 혼자만 착하믄 뭐하노 / 박제영 착한 남편과 사느라 할매는 무지 고생을 했는가 보다. 손주를 앞에 두고 착하게만 살면 안 된다고 간절하게 당부한다. 정..

시읽는기쁨 2021.10.24

가령과 설령 / 박제영

가령 이것이 시다,라고 쓴 대부분의 것은 시가 아니다 설령 이것이 시가 되지 않더라도,라고 씌어진 것은 대부분 시다 가령(佳嶺)은 도처에 있다. 가령 화사하고 화려한 것, 가령 사랑이란 단어, 가령 그리움이란 단어, 봄날 꽃놀이 관광버스가 가 닿는 곳, 그곳이 가령이다. 설령(雪嶺)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스며 있다. 어둡고 춥고 배고픈, 눈과 귀와 혀의 뿌리, 설령 어시장 좌판이라도, 설령 공중화장실이라도, 설령 무덤이라도,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다. 등반자여 혹은 동반자여 가령은 도처에 있고 설령은 도무지 없다 도대체 어디를 오를 것인가 - 가령과 설령 / 박제영 재미있는 시다.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다. '가령'과 '설령'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시가 되었다. 시인의 조어는 살아가는 본령을..

시읽는기쁨 20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