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17

논어[188]

선생님이 광 지방에서 난을 당했을 때 안연이 뒤처졌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 안연이 말했다. "선생님이 계신데 어떻게 죽겠습니까?" 子畏於匡 顔淵後 子曰 吾以女爲死矣 曰 子在 回何敢死 - 先進 17 이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스승의 제자 아낌과 제자의 스승 공경이 짧은 대화 속에 오롯이 들어 있다. 공자와 안회는 스승-제자를 넘어 학문적 동지였고 가족 이상의 관계였다. 안회가 죽었을 때 공자는 자식을 잃었을 때보다 더 슬퍼했다. 노나라를 떠나던 해에 공자 일행은 광 지방에서 곤경을 겪는다. BC 497년, 공자 나이 55세 때였다. 안회는 25살 청년이었다. 이때부터 14년 동안의 제후국 편력이 시작된다.

삶의나침반 2016.03.27

논어[187]

자로가 묻기를 "듣는 즉시 실행할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부형들이 계신데 어떻게 듣는 즉시 실행할 수 있을까!" 염유가 묻기를 "듣는 즉시 실행할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듣는 즉시 실행해야 한다." 공서화가 말하기를 "유가 '듣는 즉시 실행할까요?' 한즉 '부형이 계신다' 구가 '듣는 즉시 실행할까요?' '듣는 즉시 실행하라' 하시니, 저는 어리둥절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구는 머뭇거리므로 몰아센 것이고, 유는 곱절이나 서두르므로 멈칫하게 한 것이다." 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염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公西華曰 由也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求也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赤也惑 敢問 子曰 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 先進 16 과하면 누르고 모..

삶의나침반 2016.03.20

논어[186]

선생님 말씀하시다. "말솜씨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진실한 인물이라고 할까! 볼품만 좋은 사람이라고 할까!" 子曰 論篤是與 君子者乎 色莊者乎 - 先進 15 공자는 말보다 실천을 앞세운 분이다. 군자란 언어가 아니라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말솜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언변이 화려하고 논리정연하면 외화내빈인 경우가 흔하다. 겉은 볼품 없으나 안이 실한 게 낫다. 그래서 '자로' 편에서는 질박함[木]과 어눌함[訥]이 인(仁)에 가깝다고 했다. 말과 주장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는지로 사람을 보아야 한다.

삶의나침반 2016.03.11

논어[185]

자장이 사람을 잘 지도하는 방법을 물은 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차근차근 밟아가지 않으면 깊은 방속까지 들어갈 수가 없다." 子張問 善人之道 子曰 不踐迹 亦不入於室 - 先進 14 중학생일 때 본 영어 참고서 속 표지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공부에 왕도(王道)는 없다." 공부를 손쉽게 하는 방법은 없으니 꾸준하게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지금은 이해한다. 여기 나오는 공자 말씀을 들으니 그때의 문구가 떠오른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씩 밟아가는 수밖에는 없다. 그 작은 걸음이 모이면 훌쩍 앞으로 나아간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마치 산길을 걸을 때처럼. 봉우리에 닿아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봉우리가 까마득하지 않은가. 모든 건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

삶의나침반 2016.03.04

논어[184]

자고는 어릿어릿하고, 증삼은 고지식하고, 자장은 편벽하고, 자로는 거칠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안회는 그럴 듯하지. 항상 가난하지만..... 자공은 천명을 받지 않고도 재물을 모았고 억지라도 잘 맞았다." 柴也愚 參也魯 師也벽 由也언子曰 回也 其庶乎 屢空 賜 不受命 而貨殖焉 億則屢中 - 先進 13 우리와 달리 중국은 전통적으로 인물 품평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서는 제자의 단점을 지적한다. 공개적으로 이런 말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다만 안회에 대해서는 부족한 점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안회의 가난을 보는 스승의 안타까운 심정이 비친다. 자공의 부에 대해서도 어감에서는 그다지 탐탁치 않아 하는 느낌을 받는다. 돈을 보는 공자의 태도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뭐든지 지나친 것은 ..

삶의나침반 2016.02.24

논어[183]

계씨는 주(周) 천자의 경공들보다 더 큰 재벌인데, 염유가 세금으로 훑어서 더욱 더 붙도록 한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내 제자가 아니다. 애들아! 북을 치면서 조리를 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季氏 富於周公 而求也 爲之聚斂 而附益之 子曰 非吾徒也 小子 鳴鼓而功之 可也 - 先進 12 원문에 나오는 '북을 치면서 공격한다'는 표현은 마치 전쟁 상황 같다. 그만큼 공자의 분노가 대단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염유는 이 사건으로 인해 공자 학당에서 파문당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권력자인 계씨 편에 붙어 그의 사익을 도왔기 때문이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과하게 부과해서 돈이 개인의 치부에 쓰인다는 건 공자로서 용납할 수 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제자가 그런 일을 했다. 정치(正治)를 통해 바른 세상을 만들고자 불철..

삶의나침반 2016.02.19

논어[182]

자공이 묻기를 "자장과 자하는 누가 더 잘났을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지근하다. "그러면 자장이 더 나은가요?" "지나친 것은 미지근한 것과 같다." 子貢問 師與商也 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 先進 11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나오는 대목이다. 자공은 그래도 지나친 게 낫지 않느냐고 재차 물어본다. 지나침이나 모자람이나 '균형[中]'에서 벗어난 상태다. 오히려 지나친 것이 큰 화근이 될 때가 많다. 현대 문명이 그렇다. 지나치고 넘쳐나는 게 만병의 근원이 된다. 결핍보다 과잉의 독소가 무섭다. 긴스버그의 시 '너무 많은 것들'이 생각난다. 너무 많은 공장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맥주 너무 많은 담배 너무 많은 철학 너무 많은 주장 . . 너..

삶의나침반 2016.02.12

논어[181]

선생님 말씀하시다. "유의 거문고를 왜 내 집 문안에서 켜게 하는고." 제자들이 자로를 업신여겼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유는 제법 당상에 오르기는 하였지만 아직 방안에만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子曰 由之琴 奚爲於丘之門 門人不敬子路 子曰 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 - 先進 10 당시에 악(樂)은 기본 교육과정 중 하나였으므로 누구나 악기 연주를 배웠을 것이다. 각자가 이른 수준에 따라 연주하는 장소도 달랐던 것 같다. 자로는 아직 방에 들 정도는 안 되었다. 스승에게 퇴짜 맞은 자로를 제자들이 업신여기자 스승은 자로를 변호한다. 당상에 오른 실력만도 제법이다. 무인 기질인 자로의 거문고 연주를 다른 제자들과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공자의 개인별 맞춤식 교육과 함께 제자들 사이의 갈등도 살짝 엿보이는 ..

삶의나침반 2016.02.05

논어[180]

노나라 사람들이 돈을 다시 지으려고 한 즉, 민자건이 말하기를 "옛 것을 그대로 놓아 둘 일이지 어찌하여 다시 지으려고 하는고!"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는 말을 잘 않지만 말을 하면 들어맞거든!" 魯人 爲長府 閔子騫曰 仍舊貫 如之何 何必改作 子曰 夫人不言 言必有中 - 先進 9 당시 노나라에서 화폐 개혁을 하려고 한 것 같다. 민자건의 반대하는 말을 듣고 공자는 칭찬한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 예화에서 보이는 민자건의 성품은 본받을 만하다. 말수는 적지만 입을 열면 바른 말을 한다[不言 言必有中]. 민자건은 앞에서 효성이 지극한 제자로 소개된 바 있다. 대체로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삶의나침반 2016.01.31

논어[179]

민 선생은 곁에서 조리있는 태도요, 자로는 꿋꿋하였고, 염유와 자공은 부들부들하였다. 선생님도 즐거운 양 "유 같을진대 어떻게 죽게 될지 모를 거야!" 閔子侍側 誾誾如也 子路 行行如也 염有 子貢 侃侃如也 子樂 若由也 不得其死然 - 先進 8 스승을 모시는 제자의 태도에서 각자의 성격이 드러난다. 다르지만 지극한 마음을 보고 공자도 즐거웠을 것이다. 천하의 인재를 모아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그런데 공자는 자로를 걱정한다. 너무 고지식하고 강직한 성격이 제 명을 재촉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공자의 우려대로 되었다. 자로는 내란에 휩쓸렸을 때 피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의리를 지키느라 죽음을 맞았다.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의 과거와 미래를 어느 정도는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삶의나침반 2016.01.25

논어[178]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 하나도 섬길 수 없으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나!" "죽음은 어떤가요?" "삶도 모르면서 죽음을 어떻게 안담!" 季路問 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 先進 7 공자는 관념적인 철학자가 아니다. 땅에 기반을 둔 현실적인 실천가다. 나를 완성해나가며 어떻게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느냐가 공자의 과제였다. 귀신이나 죽음 같은 미지의 질문은 관심 밖이었다. 귀신을 섬기려면 사람을 잘 섬기면 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사람도 못 섬기면서 귀신을 언급하는 게 공자의 눈에는 가당찮아 보였을지 모른다. 이는 이웃 사랑이 하느님 사랑이라는 예수님 말씀과도 일치한다. 또한, 죽음과 삶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죽음이 어떤가를 묻기 ..

삶의나침반 2016.01.20

논어[177]

안연이 죽자 안로가 선생님의 수레를 팔아 외곽을 만들고 싶어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재주야 있건 없건 모두 제 아들이라고들 말하지. 이(鯉)가 죽었을 때도 관만 있고 외곽은 없었어. 내가 걸을 셈치고 외곽을 만들지 않은 것은 나도 대부의 말석에 있기 때문에 걸어다닐 수 없기 때문이었지." 顔淵死 顔路請 子之車 以爲之槨 子曰 才不才 亦各言其子也 鯉也死 有棺而無槨 吾不徒行 以爲之槨 以吾從大夫之後 不可徒行也 안연이 죽자 선생님 말씀하시다. "아!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 天喪予 안연이 죽자 선생님이 몸부림치며 울자, 모시던 제자들이 말했다. "선생님 몸부림치셨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몸부림쳤던가? 그 사람을 위하여 몸부림치지 않고 누구를 위하여 울 것이..

삶의나침반 2016.01.15

논어[176]

계강자가 "어느 제자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물으니, 선생님이 대답하시다. "안회란 애가 있어 학문을 좋아하더니 불행히도 일찍 죽고 지금은 없습니다." 季康子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 先進 5 비슷한 내용이 옹야(雍也) 편에도 나온다. 그때는 애공이 물었는데 대답이 더 자세하다. "안회란 애가 있어 학문을 좋아했지요. 가난 속에서도 투덜대는 일이 없었고, 허물도 두 번 다시 짓는 일이 없더니, 불행히도 일찍 죽고 시방은 없습니다. 아직은 학문 좋아한다는 애의 이야기를 못 듣고 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호학(好學)'은 단순히 '학문을 좋아한다'거나 '배우기를 좋아한다'로 번역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구도의 치열한 정신이 들어 있는 말이다. 공자는 ..

삶의나침반 2016.01.02

논어[175]

선생님 말씀하시다. "'효성스럽지! 민자건은'이란, 제 부모 형제들의 말이지만 트집 잡을 수가 없군." 子曰 孝哉閔子騫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 - 先進 4 기록된 민자건의 효행은 이렇다. 민자건을 낳은 어머니가 죽은 뒤 새 어머니가 들어와서 아들 둘을 낳았다. 어느 겨울날에 민자건이 아버지를 위해 수레를 몰다가 말고삐를 놓쳤는데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보니 동상이 걸려 있었다. 입고 있는 옷도 무척 얇았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가 보니 후처 소생의 두 아들은 두툼한 옷을 따스하게 입고 있었다. 아버지는 후처와 헤어지려 했다. 이때 민자건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홑옷을 입지만, 어머니가 떠나시면 세 아들이 추위에 떨게 됩니다[母在一子單 母去三子寒]." 아버지는 감동하여 이혼하지 않..

삶의나침반 2015.12.25

논어[174]

선생님 말씀하시다. "회는 내게 도움이 되는 애가 아니야! 내 말이라면 거저 좋아만 하니." 子曰 回也 非助我者也 於吾言 無所不說 - 先進 3 공자의 화법이 재미있다. 앞말만 들어보면 안회를 나무라는 소리 같다. 그러나 뒷말이 붙어 지극한 칭찬으로 변한다. 얼마나 제자가 마음에 들고 대견하면 이런 식의 표현을 할까. 교학상장(敎學相長), 스승과 제자가 서로 배우며 성장하는 관계라지만 스승의 모든 것을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 흡수해 나가는 제자가 자랑스럽지 않을 리 없다. 이런 것이 스승의 행복이다.

삶의나침반 2015.12.20

논어[173]

인격이 뛰어나기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요. 말재주에는 재아, 자공이요. 정치가로는 염유, 계로요. 문학에는 자유, 자하다. 德行 顔淵 閔子騫 염伯牛 仲弓 言語 宰我 子貢 政事 염有 季路 文學 子游 子夏 - 先進 2 공자의 간단한 인물평이다. 우리와 달리 중국은 사람을 품평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는 것 같다. 뒷담화가 아니라 공개적인 평가는 개인의 발전을 자극하는 측면에서 괜찮아 보인다. 여기 등장하는 열 명은 공문십철(孔門十哲)에 대부분 포함된다. 아마 공자가 이 말을 할 당시에는 제일 뛰어난 제자들이었을 것이다. 그중에서 셋을 고르라면 안연, 자공, 자로가 아닐까. 다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안연이리라. 이 뒤에도 공자의 안회에 대한 칭찬은 계속 나온다.

삶의나침반 2015.12.14

논어[172]

선생님 말씀하시다. "옛 사람들이 다루던 예법이나 음악은 시골뜨기 같고, 요새 사람들이 다루는 예법이나 음악은 제법 훌륭하다지만 만일 쓰게 된다면 나는 옛 사람들 것으로부터 시작하겠다." 子曰 先進於禮樂 野人也 後進於禮樂 君子也 如用之 則吾從先進 - 先進 1 새것을 좋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물건이나 시대 사조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은 사람의 호기심을 끈다. 그렇다고 옛것의 지혜를 잊으면 안 된다. 온고지신(溫古知新)이야말로 공자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다. 옳고 바른길을 분별하는 교훈을 선진(先進)에서 얻어야 한다. 이것이 참 보수의 정신이다. 현재 주위에서 보는 건 제 이익만 챙기려는 오염된 보수일 뿐이다. 온고지신은 '오래된 미래'와도 통한다. 인류는 어떻게 살아남느냐, 라는 절박..

삶의나침반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