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오후 뜨거운 언덕바지를 타고 아파트로 가는 길엔 어른이나 아이나 제 머리통보다 큰 수박 하나씩 비닐끈에 묶어들고 땀 흘리며, 땀 닦으며 정신없이 기어오른다 그들이 오르막길에서 허우적거릴 땐 손에 달린 수박이 떼구르르 구를 것도 같고, 굴러내려 쇠뭉치로 만든 공처럼 땅속 깊이 묻혀버릴 것도 같지만 무사히, 무사히 수박은 개구멍 같은 아파트 현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럼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우선 끈에 묶인 수박을 풀고 간단히 씻은 다음, 검은 등에 흰 배의 고등어 같은 부엌칼로 띵띵 부은 수박의 배를 가르면, 끈적거리는 단물을 흘리며 벌겋게 익은 속이 쩍, 갈라 떨어지고 쥐똥 같은 검은 알이 튀어나온다 그러면 저마다 스텐 숟가락을 손에 쥔 아버지와 할머니, 큰아이와 작은놈, 머리를 뒤로 묶은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