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4

무지

무지(無知)는 '아는 것이나 지식 없음'이 아니다.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현대인은 오히려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다. 손가락만 몇 번 까닥이면 세상의 온갖 지식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러므로 무지의 정의는 바뀌어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현대의 무지다. 무지에서 확신이 생긴다. 이럴 때 아는 것과 경험은 독이 된다. 과거 어느 대통령은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무지에 만용이 더해지면 꼰대가 된다. 무지는 판단하고 분별하길 좋아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확신이 깃발을 들고 거리로 몰려다니게 한다. 확신은 위험하고, 신념은 위태하다. 세상의 본질은 흑과 백이 아니라 안개 같은 것이다. 구름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살이의꿈 2019.11.14

논어[167]

선생님 말씀하시다. "삼군의 장군쯤 뺏어 올 수 있지만, 한 사내의 결심은 뺏지를 못하는 법이야."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 子罕 21 인간의 신념에는 항상 빛과 그늘이 있다. 대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용기는 인간이 가진 신념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결심[志]'도 그런 긍정적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신념의 충돌 때문에 생긴 피비린내로 인간 역사는 얼룩져왔다.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명분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과연 무엇을 위한 결심이며 신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 문구를 읽으니 지금의 정치 현실이 오버랩 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소동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진 애국심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나는 옳..

삶의나침반 2015.11.14

위험한 확신

요즈음 들어 가장 무서운 것이 확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벌이를 최고의 가치로 확신하는 사람이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어 국민의 바람과는 아랑곳없이 자기 식대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신의 믿음에 조그마한 회의라도 있었다면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몰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와중에도 대운하까지 정면 돌파 하겠다는 만용을 부리고 있다. 잘못된 확신을 가진 사람이 그 확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나오는지를 이번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확신 속에 사는 당사자는 자신의 과오를 잘 모른다. 국가만이 아니라 작게는 가정에서도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위장된 채 일방적인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대개가 사랑과 보호라는 자식에 대한 부모..

길위의단상 2008.06.03

확신의 구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확신의 구름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그 구름은 여름날의 파리떼처럼 그를 따라 이동한다.' - 버틀란드 러셀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용감하다고 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확신의 구름은 두텁고 완고하다. 그는 구름 속에 갇혀 바깥 세상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즐긴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구름이 벗겨지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은 확신의 구름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 한다. 의심과 성찰과 회의만이 확신의 구름을 옅게 만들고 그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비록 또 다른 확신의 구름에 둘러싸일지라도 그것만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이다. 진실을 향해 비틀거리며 가는 길이다.

길위의단상 2008.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