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위험한 확신

샌. 2008. 6. 3. 08:06

요즈음 들어 가장 무서운 것이 확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벌이를 최고의 가치로 확신하는 사람이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어 국민의 바람과는 아랑곳없이 자기 식대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신의 믿음에 조그마한 회의라도 있었다면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몰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와중에도 대운하까지 정면 돌파 하겠다는 만용을 부리고 있다. 잘못된 확신을 가진 사람이 그 확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나오는지를 이번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확신 속에 사는 당사자는 자신의 과오를 잘 모른다.


국가만이 아니라 작게는 가정에서도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위장된 채 일방적인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대개가 사랑과 보호라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그릇된 확신 때문이다. “이게 너를 위하는 길이야.”라며 공부에서 직업 선택, 결혼 상대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간섭은 자식의 인격을 무시하고 일방통행식이 되기 일쑤다. 그 과정에서 자녀나 부모가 마음에 입는 상처는 예상 밖으로 크다. 그러나 정작 부모는 자신의 과오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사의 잘못된 교육관에 의해 학생들은 무차별적인 세뇌를 받는다. 그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어린 영혼이 흘리는 피가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는 무덤덤할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다는 확신 때문이다. 확신은 무모하기조차 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게 만든다. 자신의 가치관이 틀릴 수도 있다는 작은 여지라도 있다면 우리는 약자인 상대방에게 조심스러워지고 좀더 배려할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확신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자면 나름대로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있어야 한다. 또 그렇게 자신만의 색깔이 있으므로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피어있는 꽃밭과 같다. 어떤 경우에는 신념이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작은 조심스런 확신이라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나라의 지도자의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우리의 짧은 현대사를 통해서도 뼈아픈 경험을 했다. 국민의 뜻을 살필 줄 모르는 대통령의 확신은 오만과 독선으로 연결되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독선적으로 자신의 주장만을 밀고 나간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기의 주장은 선이고, 타인의 주장은 악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의 저항 운동을 두고도 정부 측의 일부에서는 악의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확신을 가진 강한 사람에게 끌렸다. 학문적 성취나 종교적 믿음, 또는 사회적이나 개인적인 영역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성채를 자랑하는 사람이 좋았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신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늘이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확신이란 자신의 공허한 내면을 숨기기 위한 인간의 위장술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확신이 겉으로 드러나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수록 그 확신은 위험해진다. 그 무엇보다 무서운 흉기가 되는 것이다. 문명화된 이 시대에도 대중을 계도와 이용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사고방식 위에 위험한 확신이 더해진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문제보다 더 위험한 발상이 대운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정권이 왜 그렇게 대운하에 집착하는지 무척 불가사의하다. 쇠고기 문제가 가라앉은 뒤에는 다시 대운하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날지 모른다. 제발 자신들의 소신만 고집하지 말고 국민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주길 바랄 뿐이다. 대운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유독 정부만 귀를 막고 있다. 그리고 일부 경제적 측면만 강조하며 나라 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돈이 되는 것이면 뭐든 달려드는 물신(物神)에 대한 확신은 제발 버려주기 바란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이나 어느 한 집단의 나라가 아니다. 다행히 오늘 뉴스에서는 수입 고시에 대한 관보 게재를 연기하고, 대운하 논의를 당분간 유보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번 사태가 이명박 정권 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우리 시대의 가치관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광우병의 원인이나 대운하를 만들려는 발상이 인간의 부에 대한 끝없는 욕망, 그리고 이 시대의 특징인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에서 빚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못하면 또 다른 사건들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하늘과 역사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이 진정 이 시대에 필요하지 않을까? 인간의 확신만큼 위험한 물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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