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작은 동리 어느 집 대문 앞에 오래된 이불 한 채 나와 있다 이불은 제 몸을 둘둘 말아 모지락스런 세월도 층층으로 골고루 펴 떠받들고 앉아 있었는데 안으로 접힌 주름이 켜켜이 그늘을 만들어 무슨 꽃 자글자글 피우고 있는 게 적이나 내겐 마음 깨끼는 일이었다 그래, 무슨 말을 할라치면 어디서 붉은 접시꽃이 걸어와 입을 가로막고 지금 내 앞의 한 채 이불이란 고스란히 저 옛집의 대소사를 올올이 새기고 있을 거였다 첫날밤 족두리 푼 신부의 두근거리는 호롱불 그림자가 다녀갔으리라 그리하여 밤이면 젊은 내외가 서로 살을 섞어 청대 같은 자식도 연년으로 놓았을 거였다 아니면 평생 골골 앓는 사내의 피고름 다 받아낸 한숨 덕지덕지 괸 누더기 꽃자리였거나 혹은, 시어머니 구박에 못 견딘 며느리 속울음까장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