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 33

말 없는 아이

지인 중에 닉네임이 '머거주기'인 분이 있다. 처음에는 먹성이 좋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어렸을 때 말을 받아먹기만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말 없는 아이였다는 뜻이다. 말 없기로 치면 나도 그분 못지않았다. 어머니가 혀를 차며 자주 들려주는 일화가 있다.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여섯 살 때쯤 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5일마다 열리는 장에 따라가는 게 제일 즐거운 날이었다. 신나는 볼거리도 많았을뿐더러, 군것질거리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사탕 몇 알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었다. 집에서 장터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날 나는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갔다. 할머니는 곡식을 팔고는 호미를 비롯해 몇 가지 물건을 샀을 것이다.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길위의단상 2016.05.03

크로닉

인간이 감내해야 할 생로병사의 굴레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중년 남자인 데이비드는 말기 환자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돌보미다. 환자와 가족 이상으로 일체가 되어 고통을 함께한다. 환자를 자기 아내나 형으로 지칭할 정도다. 데이비드 같은 호스피스와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영화에는 설명이 안 나오지만 데이비드가 돌보미의 삶을 사는 데는 아픈 과거가 있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가정은 붕괴되었다. 스스로 아들을 안락사시킨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죽음에 동행자가 되려는 봉사는 그런 죄책감에서 나오지 않았나 추측된다. 데이비드는 세 번째 환자에게도 안락사 시술을 한다. 그것이 결국 영화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과 연결된다. 병들고 죽는 건 인간의 숙명이다. 많은 사람이 죽음에 ..

읽고본느낌 2016.05.02

왜요? / 천양희

강변역이 강변에 있지 않고 학여울역에 여울이 없다니요? 물까마귀는 까마귀가 아니고 물새라니요? 섬개개비는 산새이면서 섬에서 살다니요? 송사리는 웅덩이에서 일생을 마치고 무소새는 평생 제 집이 없다니요? 질경이는 뿌리로 견디고 가마우지는 절벽에서 견디다니요? 푸른 소나무도 낙엽지고 더러운 늪에서도 꽃이 피다니요? 인생이란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라니요? 필연적인 것만이 무겁고 무게가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니요? 사자별자리, 오늘밤 하늘에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회신 바랍니다, 이만 총총 - 왜요? / 천양희 저녁 무렵 밖에 나가면 머리 위에는 사자자리가 떠 있다. 서쪽으로는 오리온이 진다. 사자자리는 봄의 별자리다. 사자자리를 보고 하늘에도 봄이 온 걸 확인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

시읽는기쁨 2016.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