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국 교육의 그늘

샌. 2009. 9. 27. 10:22

(1)

얼마 전 10일짜리 자원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학생들의 농촌 체험 활동인데 교사로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런데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 학생이 개미들을 밟아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다가가서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왜 약한 개미들을 죽이냐고 물었다. 죽여도 된다고 대답한다. 너는 너보다 힘센 사람이 너를 괴롭혀도 좋으냐라고 물었다. 그래도 좋단다. 여기까지도 많이 놀랐는데 더 놀라운 대답이 이어졌다. 힘센 니가 개미를 죽이듯이 너보다 힘센 사람이 너를 괴롭히면 너는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으냐라고 물으니 아이는 대답한다. “나는 죽어도 좋아요”라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학원을 안 가도 되잖아요.”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아이는 8살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학원을 다섯 개를 다닌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이렇다. 이런 교육을 바꾸자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이것이 죄인가?


(2)

놀이터 기구들이 부서진 것을 종종 본다. 우리 모녀가 잠복취재한 결과, 시소나 그네 조랑말을 부수는 이는 술 취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다. 바로 아이들이다. 대략 초등학교 고학년들. 이들이 놀이터에 들르는 시간은 학원에서 학원으로 옮겨가는 10~20분 남짓. 짧은 시간 거칠게 논다. 논다기보다 부순다. 마구 당기고 밀어 망가지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리기라도 하듯이. 처음에 그런 아이들을 보면 나무라기도 했는데 애들이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을 알았다. 한창 나이에 시간에 쫓겨 농구나 줄넘기마저 주말 체육학원에서 몰아 할 정도니, 힘을 어디에 쓰겠는가. 거친 형태로 입으로 나오고 손발로 나온다. 방학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일제고사 부활 이후 중학생들까지 강제 보충수업으로 방학을 빼앗겼다. 정말 마음이 안 좋다.


첫번째 글은 작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진보 성향의 후보를 지원했다고 해서 재판을 받고 있는교사의 법정진술 가운데 한부분이고, 두번째 글은어느 잡지에 실린 내용이다. 아이들의 폭력적인 행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체험담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이런 것이 특수한 사례가 아니고 이미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눈을 감고 외면해서 그렇지 아이들의 심성은 이미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져 있다. 어릴 때부터 생존경쟁의 장으로 내몰리다 보니 온전한 인격체로서 성장할 기회마저 박탈된 탓이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쥐들처럼 그들의 행동은 난폭하고 즉물적이다. 교실에서도 심한 인격장애를 겪고 있는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욕구불만과 결핍감에 시달리고 있고, 마음에는 어떤 분노가 가득차 있다. 그것은 소위 혜택 받고 잘 나가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예전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방에 모여 있었어도 이렇지는 않았다. 만성이 된 탓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대개 시대가 그러니어쩔 수 없다면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기를 꺼린다.

나 역시 일선 현장에 있으면서 이런 점들이 제일 마음 아프고 답답하다. 야만적인 교육 시스템을 생산하는 사회 체제가 당분간은 변할 가망이 보이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이렇게 아이들의 삶을 망가뜨려도 되는 건지 정말 어떤 때는 공포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실업계인데 여기 아이들은 인문계 아이들에 대한 열등의식과 패배감에 젖어 있다. 가정환경도 뒷받침을 못해주지만 국영수라 불리는 주지과목의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다. 공부에는 흥미가 떨어지지만 그러나 아이들 하나하나는 재주가 많고 착하다. 인문계에서강요되는 보충수업이나 야자가 없고 성적에 대한 압박이 없어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그런지 이곳 아이들은 비교적 표정이 밝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생존경쟁에서 낙오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류 대학, 일류 직업의 꿈을 버린다는 것은 인생을 포기한 것과 다름 없이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새싹처럼 돋아나는 아이들의 푸른 생명력을 대할 때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

이런 체제라면 공부를 잘 하는 아이나 못 하는 아이나 하나 같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있다. 지금은 유치원때부터 부모의 닦달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죽고 싶다"고 태연스레 말하는 초등학교 1학년의 독백은 바로 내 자식의 경우가 아니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한 시스템이 아니다. 국가적으로는 경쟁력이니, 성장이니, 선진사회니 하며, 또 가정에서는 내 자식을 위한 길이라 최면을 걸며, 아이들의 심성을 병들게 하고 썩게 하는 이런 현실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이다. 이걸 고치는 방법은 없을까? MB 정권은 쓸데 없는 '4대강 살리기'를 할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우리 아이들부터 먼저 살리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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