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스트레스 받을까봐 시험 날짜가 비밀

샌. 2009. 9. 22. 09:27

‘독일교육 이야기’라는 블로그가 있다[http://blog.daum.net/pssyyt]. 독일에 건너가서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에 두 아이를 보내며 그곳에서 접한 독일교육 이야기를 전하는 어느 주부의 블로그다. 우리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가 신기해서 가끔 들어가서 글을 읽는다. 그분이 전하는 독일교육 이야기는 한국교육의 현실과 대비되어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도대체 독일에서는 되는 일이 한국에서는 왜 안 되는 것일까? 얼마 전 글에는 ‘학생이 스트레스 받을까봐 시험 날짜가 비밀’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랐다. 간추린 내용은 이렇다.


‘어제는 작은 아이 반 학부모 회의가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지는 않지만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있는 학부모회의 만큼은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그런데 회의가 있기 며칠 전 같은 반 친구 엄마들과 만나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투덜거린 일이 있었다. 우리 아이 선생님은 번번이 전혀 예고 없이 시험을 보는지라 몇 년 전부터 학부모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특히 4학년 성적은 상급학교 진학에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에 아이 성적에 관심 많은 부모들은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이번 학부모회의 시간에는 반드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로 말을 맞추었다. 학교생활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시험에 관한 말이 나오자 한 엄마가 말을 꺼냈다. 그녀는 “도대체 왜 시험을 예고도 없이 보는 것이냐? 시험을 위해서 집에서 약간이라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특히 이번 성적은 상급학교 진학에 중요한 기준이 될 텐데 하루 전이라도 시험날짜를 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니야?”고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 선생님은 ‘앞으로도 계속 예고 없이 볼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시험을 예고 없이 보는 이유를 듣고는 모두들 할 말이 없어졌다. “시험 날짜를 알려주면 분명 아이들을 놀지도 못하게 하고 공부시키려 할 것이 뻔하다. 시험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다는 것은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날짜를 예고해서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게 하고 싶지 않다.” 이날 선생님의 변명은 정말 뜻밖이었다. 독일 교육에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면서도 가끔 ‘아직도 멀었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시험을 불시에 보는 이유를 나는 당연히 평소실력을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의심 없이 믿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받게 될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그런데 여기서 더 엉성한 현실은 교사의 개인적인 교육관에 따라 반마다 학교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선생님은 반드시 며칠 전에 날짜를 예고해 주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날짜를 알려준다고 해서 초등학생을 지나치게 공부시킬 부모도 거의 없으련만 무슨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는다는 것인지 나무 과한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스스로의 판단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독일 교사들의 교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뚝 서 있다. 이것도 아마 경쟁 없는 교육의 결과일 것이다. 옆 사람과 옆 반과 다른 학교와 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교사의 소신을 발휘하는데 독일학교 만큼 좋은 환경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선생님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성적처리 방식이 그렇고, 평가 항목과 기준이 교사마다 다 다르다는 점도 그렇다. 이 모든 것이 선생님에 대한 학부모들의 절대적인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독일학교에서는 이러한 불신이 깨어질 경우 발생할 분쟁의 소지가 곳곳에 널려있는데도 큰 잡음 없이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독일에서의 교사는 독립적이면서 권한이 많다. 이것은 10여 년 전에 독일 연수를 갔을 때도 느꼈던 것이었다. 학교를 방문하고 수업 참관을 하면서 교권이란 것이 이런 거구나 하고 부럽게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학생들은 인문계인 김나지움, 아니면 기술계 학교로 가게 된다. 물론 김나지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성적이 좋아야 한다. 이때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그동안 교사가 평가한 성적이 절대적이다. 우리처럼 일제고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알아서 주관적으로 평가를 한다. 평가항목이나 기준이 교사마다 다 다르다. 그런데도 아무 말썽이 없다는 게 우리 눈에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분 아이의 담임은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을까 봐 시험 날짜를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런 개별적인 교사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사회, 그리고 아이들의 시험 스트레스까지 배려해 주는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일제고사식의 시험으로 학교와 지역을 비교하면서 온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는다. 아마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교육 받은 사람이 한국교육의 현실을 본다면 가히 살인적이라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 아이의 공부에만 목매다는 학부모들은 방과 후에도 두서너 군데의 학원을 순례시키며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고난의 행군으로 아이들을 내몬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신념과 열정 탓이다. 그런데 왜 그래야만 하지?


‘경쟁 없는 교육’이라고 하면 환상이라고 폄하하거나, 심하면 빨갱이라고까지 비난하다. 독일이나 프랑스라고 경쟁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독일도 점차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변화가 교육계에서도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 우리의 현실처럼 포악하고 폭력적이지는 않다. 세계화니 신자유주의니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느니 하면서 우리 교육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제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학교는 서열화 되고 더 높은 사다리로 오르기 위한 생존경쟁은 어릴 때부터 치열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는 생존과 일등이 과연 행복인가? ‘독일교육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현실이 더욱 안타깝고 서글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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