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새 출퇴근길이 생기다

샌. 2009. 9. 18. 14:35



전철 9호선이 개통되면서 새 출퇴근길이 생겼다. 집과 동작역 사이의 산길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사당역까지 걸어가던 길보다는 숲길을 지나가므로 훨씬 좋아졌다. 다만 정장 차림으로 걷기에는 마치 양복에 갓을 쓴 것처럼 어색하다. 아침 산책을 나온 등산객들 사이에서 구두를 신고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내 모습은 별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둘째치고 걷고 나면 구두나 바지가 흙으로 지저분해지는 게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아침 출근길에 이런 산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 받은 일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아닌가.

 

전철을 이용하면 5 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이렇게 30 분이나 걸리면서도 일부러 걸어서 간다. 집에서 동작역으로 가든 사당역으로 가든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이 단축되는 것에 신경을 쓰지만 나는 걸을 수 있는 길이 얼마나 좋느냐에 관심이있다. 다행히 사당역으로 가는 길도 주택가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가면 차량 소음도 피하고 심심하지도 않아 좋다. 아침의 골목길 풍경은 언제나 새롭고 흥미롭다. 역시 전철을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길이지만 나는 일부러 걷는 쪽을 택한다. 9호선이 개통되면서 반긴 것도 시간 단축보다는 바로 이 산길을 자주 만날 수 있게 된 때문이었다.

 

직장 인근의 동작역에 도착해서도 대개 한강 둔치를따라 난 우회로를 걷는다. 한강에 나서면 우선 시야가 트여서 가슴이 시원해진다. 아침 공기 역시 더없이맑고 신선하다. 한강에는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은데 같은 시간대에 지나다 보니항상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벗은 상체가 온통 땀으로 범벅되어 달리는 청년을 오늘도 마주친다. 단단한 몸과 왕자 복근을 보며 나는 부러워 한다. 짧은 팬티의 육상복 차림을 한 할아버지는 늘 뒷걸음으로 걸으며 호흡이 가쁘다. 할아버지는 가끔 양손을 옆구리에 대고 한강을 향해 고함을 치는데 나에게는 마치 한밤중에 늑대 우는 소리로 들린다. 영화 '안토니오스 라인'에서 보름달만 뜨면 달을 보고 소리를 지르는 불쌍한 여자가 오버랩 된다. 아주머니 넷은 늘 이 시간이면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곁눈질로 살펴보는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무척 평화로운 모습이다.또 참새들의 집이 된 회화나무도 있다. 그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귀가 간지럽다. 이 나무 밑에서는 언제나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 한강 둔치길을 따라 걷는 시간도 약 30 분 정도 걸린다. 그러므로 출근할 때 총 1 시간 정도는 걷는 셈이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걸은 열기로 몸은 후끈 달아올라 있다.

 

9호선이 생기면서 퇴근할 때는 다시 한강을 따라 여의도까지 걸어가기도 한다. 여의도 서편 벚꽃길을 지나 국회의사당 구내를 통과해서 국회의사당역에서 전철을 탄다. 이 길은 걷는데는 거의 1 시간 정도 걸린다. 높으신 분들의 전당인 국회의사당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엄청나게 크고 위압적이다. 여기서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표정은 하나 같이 근엄하고 엄숙하면서 딱딱하게 굳어있는 게 특징이다. 골치 아픈 나랏일을 하고 거들다 보니 다 그렇게 변했나 보다. 나는 처음 이 사람들을 보면서 '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가 떠올랐다. 그래서 왠지 '흑색 신사'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저 거대한 전당도 '흑색 신사들의 집'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지금 매스컴에서는 인사청문회로 시끄럽지만 바로 그 현장인 이곳은 의외로 조용하고 도리어 적막하다. '그들의 나라'는 내 감각으로부터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렇게 해서내가 걷는 시간은 출근할 때 1 시간, 퇴근할 때 1 시간이다.거리로는 왕복 8 km정도 될 것이다. 이만하면 기본운동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걷기가 좋아서 나는 걷는다. 아마 의무적인 운동이라면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덕분에 자가용은 일주일 내내 주차장에서 저 혼자 쉬고 있다. 가끔 쓸 때가 있지만 서울 시내서 운전하는 것은 스트레스라서 별로 핸들을 잡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는 좀더 길고 아름다운 새 길을 개발해 봐야겠다. 그것은 히말라야을 오르는 산악인들이 새 루트를 개척하는 것 만큼이나 신나고 스릴 넘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나도 워크홀릭(Walkholic)이라 불러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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