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비로봉에서 폭우를 만나다

샌. 2009. 9. 13. 14:18

D 산악회를 따라 소백산에 올랐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대로소백산의 품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면서도 이때껏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에는 오르지를 못했다. 소백산에 간다고 해도 연화봉까지가 고작이었다.

 

마침 등산 코스에 비로봉과 국망봉을 지나는 소백산 능선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비로봉 부근의 주목 군락지도 보고, 국망봉까지 이어지는 장쾌한 소백산 능선의 바람도 맞고 싶었다. 또 능선길의 야생화들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출발할 때부터 잔뜩 흐린 날이 산을 오를때는 가는 비가 간간이 내렸다. 그러나 등산 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산길은 구름에묻혀도리어 분위기 있는 풍경을 만들었다. 능선에서 날씨만 갠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날이었다.

 





정상에 가까워지니 숲이 사라지고 광활한 초원 지대가 펼쳐지면서 야생화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이곳은 낮은 기온 때문인지 벌써 구절초가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서울 근교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꽃들이 많았다. 그러나 일행을 따라잡느라고 꽃들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단체 산악회를 따라오면 아쉬운 점이 이런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걸을 수밖에 없다.

 

드디어 비로봉에 도착하니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며 사위가 컴컴해지고 바람과 함께 비가 몰려왔다. 순식간의 일이라 다들 우의를 챙기기도 바빴다. 난 우의가 준비 안 돼 우산을 썼는데 옆으로 내리꽂는 빗줄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도망치듯 부리나케 정상을 떠났다. 비에 흠뻑 젖은 바지를 따라 등산화 속으로 물이 들어가 신은 질척거렸다. 찬 기운에 몸은 떨리고 이러다 무슨 일이라도 당하지 않는지 두려웠다. 모두들 하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 찾은 비로봉(1439.5m)은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 이제야 왔느냐고 나무라는 것 같았다. 갑작스런 폭우로 전체 일정도 어긋나버렸다. 원래는 비로봉에서 국망봉을 거쳐 구인사로 내려가는 긴 능선길을 타려고 했으나 한시 빨리 비를 피하는 것이 급했으므로 올라왔던 길로 그냥 내려갔다.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스틱을 들고 미끄러운 길을 힘들게 하산했다. 질척거리는 신발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산행 중 이렇게 큰비를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산행시에는 항상 악천후와 불의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인간은 계획을 세우지만 하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단양 가곡면 어의곡리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북봉을 지나 비로봉에 올랐다. 마침 그때에 갑작스런 비를 만나같은 코스로 부리나케 하산했다. 결국은 최단코스로 비로봉을 다녀온 셈이 되었다.시간은 4시간 30분이 걸렸다. 다내려와서야 하늘이 개었다.

 

귀경길에는 피화기(避禍基)마을이라는 산속 오지 마을에서 닭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힘들었던 등산후라 무엇인들 맛있지 않으랴. 그러나 이 집의 토속 음식은 정말 맛났다. 토종닭, 닭죽, 감자전, 옥수수, 산채비빔밥, 거기에 유명한 대강막걸리까지, 푸짐하게 나오는 산골 음식을 포식했다.

 

제대로 소백산 능선길을 걸어보려 한 기대는 접어야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던 산행이었다. 비로봉에서의 폭우를 언제 다시 맞아볼 것인가. 국망봉과 그 능선길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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