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태양초

샌. 2009. 9. 7. 10:46



고추를 말리는 어머니의 정성은 극진하시다. 요사이는 고추 농사가 힘들다고안 하는 집도 많고, 하더라도 고추 말리기가 고생이라며 건조기 신세를 지는 게 보통인데 어머니는 억척스레 전통적인 방법으로 태양초를 만드신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오면 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 물기를 제거하고 비닐하우스에서 부직포를 덮고 며칠간 말린다. 어느 정도 색깔이 익으면 다시 마당에서 완전히 말린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방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고추 수확이 시작되는 8월 초부터 한 달 반 동안 고향집 마당은 늘 붉은 고추로 덮여 있다. 지금 농촌에서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 고추를 말리는 집은 보기 어렵다. 도시 사람들이 태양초라고 사 먹는 고추도 대부분 기계에서 말린것이다. 심지어는 태양초로 보이기 위해 고추 꼭지를 물에 불리기도 한다. 자식 줄 것이 아니면 이렇게 고생하며 햇볕에 고추를 말리지는 않는다.

 

하여튼 농작물을 기르고 거두는 어머니의 정성은 이웃분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남자들도 따라 하지 못한다고 한다. 대신 어머니는 살림이나 사람 챙기는 데는 관심이 덜하다. 자식 입장에서는 그 반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니의 일욕심은 말려도 되지 않으니 어떡하랴. 그게 다 자식 먹이는 재미로 하는 거라고 본인은 말씀하신다. 그래도 자식 입장에서는 안스럽고 죄스럽기만 하다.

 



일 마치고 줄에 걸어 놓은 어머니의 복대.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 늘 이렇게 두꺼운 복대를 하고 들에 나가신다. 농사 짓는 어르신들 중에 몸 성한 분은 한 분도 없을 뿐더러 어지간한 병은 아프다고 하지도 않는다. 자식 마음을 아프게 하는 복대다.

 



주인 잃은 텅 빈 방. 외할머니가 떠나간 자리가 크다.이 방에 들면 가슴으로 지나가는 빈 바람 소리 들린다. 나는 자격지심에 젖어 자꾸만 가라앉는다.

 

어머니, 몇 물 째 따다 말리시는 건가요


할머니 방에 고추가 널려 있다

반쯤 마른 채 매운 냄새 짙게 풍기고 있다

듬성듬성 짓무른 것도 보이고

바싹 마른 것들은 푸대에 담겨 있다

아랫방에다 말리면 되는데 싶어 여쭸더니

창문을 그렇게 열어 뒀는데도

돌아가신 할머니 냄새 도무지 가시지 않아

그 냄새 쫓느라고,슬쩍 웃으신다


그렇구나, 방안 가득 이 붉은 것들 한 때는

시퍼렇던 시집살이로구나

눈물겹던 청상의 여름날들을

이렇게 꼬들꼬들 말리고 계셨구나

그럼 푸대 속 저 마른 것들

하, 설움이구나


설움도 곱게 말려 빻으면 매운 情,

맛 돋우는 양념이 되는구나


몇 물을 더 따다 말려야 끝물인가요, 어머니

 

- 매운 정 / 신현복

 



마당 한 켠 텃밭에는 올 김장 배추가 자라고 있다. 다음 달은 추석이고, 그 다음 달에는 다시 김장을 하러 모일 것이다. 효도를 하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다. 어디서 잘못 된 것일까? 많이 답답하다.

 



그래도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다. 사는 일이쓸쓸하고 허전해도, 막막하고 아파도,그래도 살아내야만 한다고 가을 하늘이 말한다.그래, 씩씩하게 살아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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