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불면증을앓고 있다. 4년 전 뇌수술을 받은 뒤 더 심해졌고, 작년에 딸을 시집보낸 전후로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그때는 수면제도 약발이 듣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흔했다. 본인의 고통이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심정도 무척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다행히 해가 바뀌면서 요사이는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이젠 가끔 수면제를 이용할 뿐 전에 비하면 수월하게 잠이 드는 편이다. 그래도 두세 시까지는 침대와 거실을 왔다갔다한다. 잠드는 게 전쟁이다. 반면에 나는 잠이 너무 많다. 하루에 아홉 시간 넘게 잠을 잔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아침 여덟 시가 넘어야 눈을 뜬다. 아내가 자야 할 잠을 내가 다 뺏어온 것 같다.
어제는 저녁 운동을 다녀온 아내가 졸립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그때 나는 위층 떠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책을 보며 마음을 달래던 중이었다. 불을 끄니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수년 사이에 아내의 잠들기 시작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신기하고 고맙고 감사했다. 어젯밤 아내의 코 고는 소리는이 세상 무엇보다 더 아름답고 감미로운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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