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30]

샌. 2008. 7. 20. 18:30

그가 어린아이가 되면

그와 더불어 어린아이가 되십시오!

그가 분수 없으면

그와 더불어 분수 없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가 허물없이 굴면

그와 더불어 허물없이 구십시오!

그와 소통하여 병통이 없는 경지로 들어야 합니다.

 

彼且爲영兒

亦與之爲영兒

彼且爲無町畦

亦與之爲無町畦

彼且爲無崖

亦與之爲無崖

達之入於無疵

 

- 人間世 4

 

성품이 나쁘기로 소문한 위나라 태자의 스승으로 임명된 안합(顔闔)이 거백옥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한다. 이에 거백옥이 답한 내용 중 일부분이다. 어린아이가 되면 같이 어린아이가 되고, 분수 없이 놀면 같이 분수 없이 놀고, 허물없이 굴면 같이 그렇게 하라는 내용이다.

 

이것은 자유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무엇에도 거리낌 없고, 무엇과도 잘 어울린다. 마치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모양이 되고,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난 모양이 되는 물과 같이 부드러운 사람이다. 겉으로 보면 자기 주장이나 자기 뜻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 속으로는 자기가 바로 서 있는 사람, 중심이 바로 잡혀 있는 사람이다.

 

노자 23 장에 보면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그러므로 모든 일을 도를 따라 하는 사람은, 도를 지닌 자와는 도로 어울리고, 덕을 지닌 자와는 덕으로 어울리고, 잃은 자와는 잃음으로 어울린다)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장자와 같은 말이다. 사도 바오로도 비슷한 말을 했다. 고린도 1서에서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그래서 유다인에게는 유다인처럼, 율법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율법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 밖에 있는 사람처럼,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논어에 나오는 '和而不同'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모든 종교나 사상의 지향은 자유인이고, 자유인은 어린아이 같이 천진난만하면서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 같은 소인들이야 사실 흉내 내기도 어려운 경지다.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는 도리어 한 무리가 되어 버린다. 도적을 교화하러 들어갔다가 도적과 한 무리가 되는 꼴이다. 어떤 못난 사람은 제 멋대로 하는 걸 자유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같이 어린아이가 되고, 같이 분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심(慈悲心)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걸 보면 내가 가야 할 길은멀고도 멀었다. 아직도좁은 자기 주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인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너무나 작아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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