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작명의 즐거움 / 이정록

샌. 2011. 11. 19. 08:50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愛必)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방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성인용풍선, 똘똘이하이바, 동굴탐사복, 꼬치카바, 꿀방망이장갑, 정자지우개, 버섯덮개, 거시기골무, 여따찍싸, 버섯랩, 올챙이수용소, 쭈쭈바껍데기, 솟아난열정내가막는다, 가운뎃다리작업복, 즐싸, 고무자꾸, 무골장군수영복, 액가두리, 정자감옥, 응응응장화,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아,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 바

나는 한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봄 가뭄에 보리누룽지처럼 졸아붙은 올챙이 눈

그 작고 깊은 끈적임을 천배쯤 키워놓으면

그게 바로 콘돔이거니, 달리 요약 함축할 길 없어

개펄 진창에 허벅지까지 빠지던 먹먹함만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를 나란히 써놓고

머릿속 뻘구녕만 들락거려보는 것이었다

 

     - 작명의 즐거움 / 이정록

 

 

가을비로 우중충한 오늘 아침은 재미있는 시 한 편을 꺼내 웃으며 읽어본다. 기발한 작명을 보며 시인도 감탄하게 되었나 보다. 그러나 콘돔의 우리말 공모를 소재로 맛깔스런 말잔치를 벌이고 있는 시인의 재주도 대단하다. 정말 시의 소재에는 한계가 없다. 시인은 어떤 재료로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마술사 같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는데 이런 언어의 향연을 보면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영민함이 엉뚱한 데에 쓰이는 게 가끔 탈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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