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아흔여섯의 나 / 시바타 도요

샌. 2011. 11. 6. 09:45

시바타 씨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도우미의

물음에

난처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잘못됐다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웃을 뿐이었습니다

 

     - 아흔여섯의 나 / 시바타 도요

 

시바타 도요, 1911년에 태어났으니 백 세를 넘었다. 아흔이 넘어 시를 쓰기 시작해서 산케이 신문의 '아침의 시'에 입선되었다. 그리고 시집까지 내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에 <약해지지 마>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백 세가 넘어서도 시를 쓸 수 있다는 건보통 축복이 아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싱그러운 감성이 유지된다는 게 기적처럼 보인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관심이 없으면 시는 나오지 않는다. TV에도 가끔 장수 노인이 나오지만 아흔이 넘은 나이에 시를 쓴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시바타 도요 님도 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평범한 할머니였다. 그런데 메모를 해 놓은 글이 우연히 다른 사람 눈에 띄었고 시로까지 발전했다.

 

도요 님은 백 세가 넘은 지금도 혼자 살고 계신다. 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러 온다. 몸은 불편하신 데가 많겠지만 저렇게 건강한 정신으로 살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럽다. 나도 도요 님을 닮고 싶다.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 있고 싶다. 그래서 시를 쓰지는 못하더라도 마지막 날까지 시를 읽고 시와 함께하고 싶다. 그런 축복이 나에게도 내려질 수 있을까, 멋지고 아름다운 할머니시다.

 

<약해지지 마>에 수록된 다른 몇 편의 시들이다.

 

나를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아요

"오늘은 무슨 요일이죠?"

"9 더하기 9는 얼마예요?"

바보 같은 질문도

사양합니다

 

"사이죠 야소의 시를

좋아하나요?"

"고이즈미 내각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질문이라면

환영합니다

 

    - 선생님께

 

 

아이가

생긴 걸

알렸을 때

당신은

"정말? 잘됐다

나 이제부터

더 열심히

일할게"

기뻐하며 말해주었죠

 

어깨를 나란히 하고

벚꽃나무 가로수 아래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던 그날

내가 가장

행복했던 날

 

    - 추억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 바람과 햇살과 나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 약해지지 마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희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했다고

기쁜 듯

얘기했던 적이 있어

그 후로 정성껏

아흔일곱 지금도

화장을 하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 화장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와 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 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 지 열여덟 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 나

 

 

홀로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이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나는 불행해...."

한숨짓는 네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따뜻한 아침

햇살이 비출 거야

 

    - 아침은 올 거야

 

 

나,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소리 하지 않아

 

아흔여덟에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