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밀이 아줌마는 때를 밀고 있지 않을 때도
금방 눈에 뜨인다
온통 벌거벗은 여자들 속에서
검거나 빨간 비키니를 입고 있기 때문일까
안 쓰는 대야를 걷어다 한쪽에 치우고 있거나
좁은 침대에 벗은 여자를 누이고
땀을 흘리며 문지르고 있을 때도
때밀이 아줌마는 다른 여자들과 어딘지 달라 보인다
처음에는 때밀이 아줌마가 아니라
침대에 누워 때를 밀게 하는 여자들이 더 눈에 뜨였다
만삭의 임산부나
시들어 조그매진 할머니가 누워 있으면 마음이 놓였지만
좁은 침대 위에 널브러져
왜소한 때밀이 아줌마에게 살집 피둥한 몸을 맡기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
‘게으르기도 해라. 제 몸의 때도 제 손으로 못 미나.’
살짝 끓는 물에 튀겨져 털을 밀고 있는 하얀 돼지 같기도 하고
잔돈푼에 노예를 산 거만한 마나님 같기도 하고
게다가 요구르트에 우유에 퍼런 오이 간 것에....
초라한 동네 목욕탕에서 몸에 범벅을 하고 있는 여자가
대저 안 어울려 보이기도 하고
그러나 이제 나도 나이가 먹었나
때밀이 아줌마에게 신경이 쓰인다
집집마다 샤워 시설이 되어 목욕탕 손님이 줄어서 그런지
때를 밀고 있을 때보다는
느릿느릿 손님들이 쓰다 놓고 간 대야를 걷고 있거나
대기실 체중계 앞에서 앉아 잡담이나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목욕을 늘 혼자 가는 내가
아이들을 둘 달고 와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
“등 밀어 드려요?” 하니
“아줌마한테 등만 밀어달라고 할려고 했는데...” 하는데
마음이 뜨끔하여 때밀이 아줌마를 힐끔 봤다
‘오늘도 난 저 아줌마 일을 빼앗은 게 되었네’, 하고
- 때밀이 아줌마는 금방 눈에 뜨인다 / 양애경
내가 목욕탕을 처음 가게 된 것은 서울로 유학 온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그 전에는 집에서 물을 데워 부엌에서 때를 벗겼는데 중학생일 때까지도 외할머니가 등을 밀어 주었다. 당시 목욕탕은 가운데 둥그런 탕이 있고 그 안에 들어가 때를 불린 다음 탕 둘레에 앉아 대야로 물을 퍼가며 때를 벗겼다. 지금과 같은 사우나나 휴식 개념이 아니라 오직 때를 벗기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목욕탕에 갔다. 갔다 오면 얼마나 세게 밀었는지 늘 살이 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때밀이는 없었다. 옆 사람과 서로 등을 밀어주는 게 당연했다. 처음 때밀이를 본 건 70년대 초가 아니었던가 싶다. 때를 벗기는 목욕탕이 있다는 걸 안 것만큼이나 때밀이의 등장은 너무 생경했다. 홀딱 벗고 내 몸을 남에게 맡긴다는 게 나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오래 전에 디스크 수술을 받고 나서 몸이 불편할 때 딱 한 번 때밀이의 신세를 진 적 외에는 때밀이에게 몸을 맡길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시에 나오는 것처럼 끓는 물에 튀겨져 털을 밀고 있는 돼지 같다는 그런 느낌, 또 내 몸의 때조차 스스로 밀지 못해서야 하는 강박감이 나를 침대 위에 눕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에는 사우나를 무척 즐겼는데 귀가 아프고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발을 겸해 가는 게 고작이다. 그러니 목욕탕에 가는 날은 때를 미는 날이다. 다시 옛날식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제 등의 때는 어찌 하지 못한다. 서로 등을 밀어주고 받는 건 마치 원시인들이나 하는 행위로 변했다. 언젠가 옆 사람에게 등을 밀어주겠다고 했더니 말없이 다른 데로 가버리는 걸 보고는 다시는 그런 부탁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 등은 일 년 가까이 때수건이 닿지 못하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늦둥이더라도 아들 하나 낳을 걸, 후회하고 있다.
요사이는 때밀이를 목욕관리사로 부른다. 학원에서 기술도 배워야 하고 자격증도 따야 하는 당당한 직업이 되었다. 큰 사우나에서는 수입도 괜찮다고 한다. 그런 데는 빌딩 전체가 사우나, 찜질방 등 대규모다. 반면에 동네의 작은 목욕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목욕관리사보다는 때밀이 아줌마가 훨씬 정겹게 들리는데, 이 시를 읽다보니 엉뚱한 생각이 이것저것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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