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아름다운 저녁 시간

샌. 2006. 8. 7. 11:47

늦은 감자를 캐고 옥수수의 첫 수확을 했다. 감자고 옥수수고 올해는 결실이 영 시원찮다. 수 년 중 최악의 결과다. 이것은 주인장의 마음 탓이고, 중간 관리를 제대로 안해 준 탓이다. 초라한 수확물을 들여다보니 주인을 잘못 만나 제대로 영글지도 못했는가 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얘들아, 잘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두 주 전에 밭고랑의 풀을 뽑고,뽑은 풀로 고랑을 덮어 두었다. 다른 풀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풀들이 다시 뿌리를 내리며 살아나고 있다. 지난 번 막바지 장맛비에 힘을 얻었는가 보다. 그래서 다시 뒤집어 주어야 했다. 다행히 아직은 뿌리가 깊지 않아 땅에서 잘 떨어진다. 어찌 보면 잔인한 노릇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작물 가꾸기란 인간의 필요에 의해 한 생명은 살리고, 다른 생명은 죽이게 된다. 여기서 생명의 가치가 동일하다는 것은 관념상의 유희일 뿐이다. 더구나 오늘은 확인사살까지 한 셈이니 저들이 의식이 있다면 참으로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라고 아우성 칠지 모른다.

저녁 일을 마치고 찬 물로 샤워를 한 후 저녁밥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거실에 앉아 어둑해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나에게는 제일 행복하다. 땀을 흠뻑 흘렸으니 몸은 적당히 노곤하고,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조용하다. 다른 잡생각이 일어날 여지가 없는 시간이다. 뜨거운 태양도 휴식을 취하러 집으로 돌아가고, 창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두워지면서 풀벌레들도 제 때를 만난 듯 사랑의 세레나데를 높인다. 여러 종류와 함께 어우러진 노래 소리는 자연의 관현악이다. 도시와 비교하면 여기는 천국이다. 인공의 소음도 짜증나는 열기도 없다. 밤이 되면 만월에 가까워지는 달이 떠오르고 온 몸을 간지리는 달빛의 애무에 나는 잠 못들 것이다.

이웃 수녀원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수녀님들이 삼삼오오 산책을 나서는 모습은 이곳의 전형적인 저녁 풍경이다. 옅은 회색의 수녀복은점점 무채색으로 변하는 이 저녁 시간과잘 어울린다. 연민 같은 것, 측은함, 안스러움, 그리고 높은 종교에 대한 동경심으로 내 마음은 가득해 진다. 종교심이랄까, 그러나 한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그것,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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