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고난은 신의 선물

샌. 2006. 7. 29. 14:45

터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세 개의 쓰나미를 연속으로 맞고 있습니다. 왜 불행이 찾아올 때는 한꺼번에 몰려서 올까요? 안 되는 집은 죽어라 해도 일이 안 풀리고, 잘 되는 집은 모든 일이 쉽게 뜻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상하게 생각되는 그런 현상은 확률적으로 볼 때는 당연하다고 합니다. 동전을 수백 회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정확히 50%가 되지만, 실제 나오는 경우는 ‘앞뒤앞뒤앞뒤...’가 아니라 ‘앞앞앞뒤뒤앞뒤뒤앞앞....’ 이런 식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불행에 너무 속 상해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가 될까요?


개인이건, 민족이건, 국가건 역사는 고난의 연속입니다. 묘하게도 착한 사람이나 집단은 힘들게 살게 되고, 악한 사람이나 집단은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는 게 세상사이기도 합니다. 뭔가 의미 있게 살려고 하면 꼭 고난이 뒤따릅니다.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스라엘 민족은 2천 년 가까이 나라 없는 설움을 겪었습니다. 지금도 주변국들과 불화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물론 지금의 이스라엘 행태에는 비난받을 여지가 많지만, 아마 지구상에 존재하는 민족 가운데 가장 고난을 받고 있는 민족이라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신은 왜 하필 이스라엘에게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고난을 내리고 있을까요?


함석헌 선생님도 우리의 역사를 기독교적 고난사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 역시 이스라엘 못지않은 고난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고난에서 신의 뜻을 읽으려 합니다. 고난은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 만들어지는 용광로가 됩니다. 그것은 결국 평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 한민족이 신의 단련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옛날에 읽었던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고난에 대한 성서적 해석의 대표적인 것은 욥기일 것입니다. 욥은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아들 일곱과 딸 셋에, 만여 마리의 가축이 그의 소유였습니다. 그는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느님은 그의 자녀와 재산을 모두 거두어 갔습니다. 그리고 욥에게는 몹쓸 피부병을 주어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으며 잿더미 속에 앉아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욥기에는 친구들이 찾아와서 나누는 고통의 원인에 대한 긴 토론이 나옵니다. 일견 지루해 보이는 이 내용은 욥의 고통과 고뇌를 상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욥은 인간적인 분별의 무의미와 하느님의 지고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늘의 뜻과 경륜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당신께서는 “지각없이 내 뜻을 가리는 이자는 누구냐?”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너에게 물을 터이니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왜 인생이 불공평하고, 왜 아무 죄 없는 사람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를 욥기가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고난 뒤에 영광이 온다거나, 영적 각성을 한다거나, 축복을 받는다고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욥기 말미에 욥이 건강을 회복하고 물질적 축복을 받는다고 나오는 것은 아쉽기만 합니다.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욥기에서 읽는 것은 하늘이 하시는 일에 대한 불가해성입니다. 그것이 제가 욥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강하고 당당하게 서술하는 예언서와 달리 욥기의 사상은 조심스럽고 철학적입니다. 신비적 불가지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이유도 모르게 닥치는 고난에 대해서도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조물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인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지 고난을 감사히 받아들일 뿐입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닥치는 고통은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것을 하늘의 뜻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신의 선물입니다. 왜 신은 선물보따리 안에 고난을 준비해 두었는지를 우리는 모릅니다. 고난을 이기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단계에 나아가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 스스로 파멸하기도 합니다. 제 짧은 지식으로는 인간이 이름 붙인 복(福)과 화(禍)란 개념이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는 영판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복이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독이 됩니다. 반면에 참된 하늘의 축복은 고난의 모습으로 찾아오는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함석헌 선생님의 다음 말씀은 고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 선으로 포장되어 있다면 하나님에게로 가는 길은 악으로 포장되어 있다.’

‘고난은 인생을 하나님에게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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