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있는 이곳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마치 혈관 속에 모래가 들어간 듯 마음은 온통 서걱거린다. 내가 터를 정하고, 손수 집을 짓고, 땅과 혼이 들어간 곳인데, 사방을 둘러보면 내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마치 못 올 곳에 온 것처럼 서먹서먹하다.
밖은 장맛비가 내리는 저녁이다.
철수를 생각하니 더욱 허전해진다. 그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나에게는 내 전부를 걸었던 이상의 포기와 마찬가지다. 선전포고한 전쟁에서 항복의 의미이기도 하다. 단지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슬픔에 빠지게 하는감정에는 집착이 들어있다. 애착, 비애, 고독, 쓸쓸함과 같은 진한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인정하기 싫지만 버린다고 하면서 또 다른 집착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상승할 때보다 바닥으로 추락할 때 신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린다. 추락하기 위해서 상승이 필요하다. 밤 또한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 한낮의 어지러운 감관이 닫혀야 고요한 내면의 빛이 드러난다.
모든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우리는 서로의 온기에 의해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너의 따스한온기가 필요하다.
삶은 고통이고 아픔이다. 겉만 보고 이 사람의 고통이 저 사람의 고통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시지프스의 바위를 짊어지고 있다. 상대방 내면의 고통의 정도를 타인이 측량할 수는 없다.
책 속의 그녀가 말했다. "누구에게나 하나의 세계와 작별을 고하는 시간이 찾아오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