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뱀은 여전히 두렵다

샌. 2006. 6. 19. 09:22

풀을 베러 현관을 나서는데 바로 앞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기가 뱀이 많긴 하지만 한낮에 이렇게 집 앞에까지 나와있는 것은 처음이다. 갑자기 뱀을 맞닥뜨려서 깜짝 놀랐다. 뱀도 놀랐는지 처음에는 꼼짝도 안 하다가 소리를 지르니 스르르 도망을 간다. 길이가 거의 1 m나 되는 큰 뱀이다. 뒤따라가며 위협을 해서 쫓아내었다.

 

뱀은 생긴 모양 자체가 징그럽고 섬뜩하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괜히 기분이 좋지 않고 적대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길을 가다가 갑자기 발 밑에서 뱀을 만나게 되면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아마 우리들 유전자에는 뱀에 대한 경계를 위해 공포심이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선천적 본능이 아닐 수도 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밭일을 하러 나간 여자가 있었다. 아이를 혼자 놀게 밭둑에 놓아두고 한참 일을 하고 돌아와 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뱀이 아이 몸을 감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그 뱀을 만지며 같이 놀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 얘기가 사실이라면 뱀에 대한 나쁜 이미지는 출생 후의 경험이나 교육을 통해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집 둘레에서 풀을 베다가 또 뱀을 만났다. 이번에는 작은 뱀이었는데 풀 사이에 숨어서는 꼼짝을 않고 있다. 발을 구르며 위협을 해도 달아나지를 않는다. 자신은 은폐를 잘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판단하지를 못하겠다. 풀 사이에 있는 뱀은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뱀을 밟는 일도 있다. 그러다가 뱀의 공격을 받아 물리기도 한다.

 

얼만 전에도 동네 사람이 뱀에 물려 병원에 실려갔다. 살짝 물렸다고 하는데 금방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뱀이 더 무서워졌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클 때 뱀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다. 뱀과 우리들 사이에는 항상 선전포고 상태였다. 물론 일방적인 선전포고였지만 뱀만 보면 돌맹이를 들었다. 뱀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아이들이었다. 특히 독사나 방울뱀을 만나면 우리들의 적의는 더 불탔다. 방울뱀이 따르르 꼬리를 떠는 것을 무전을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다른 뱀들이 몰려오기 전에 속적속결로 공격을 했다. 당시에 우리들 손에 희생된 뱀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그 공격은 완전히 일방적인 공격이며 살육이었다. 사실 뱀이 사람에게 준 피해는 거의 없었다.

 

논이나 도랑에는 물뱀이 살았는데 이 뱀은 독이 없어서 어른들은 논일을 하다가 이 뱀에 물려도 마치 거머리에 물린 듯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리가 도랑을 달려가면 물뱀이 쪼르르 추격해 오기도 했다. 그럴 때는 쫓고 쫓기며 뱀과 장난을 쳤다.

 

결국 낫으로 풀 베는 것은 포기하고 제초제를 들었다. 뱀 두 마리를 본 이상낫을 가지고 더 이상 풀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금년에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뱀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뱀이 있다는 것은 건강한 생태계라는 의미이다. 인간과 뱀이 서로 공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둘의 영역이 겹치게 되면 뱀은 위협의 대상이면서 늘 피해자이다.그런데 다른 동물들과 달리 아무리 해도 뱀과는 친해지기가 어렵다. 그냥 무시하고 살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다. 아담의 시대 이후로 인간과 뱀의 악연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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