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개구리 소리

샌. 2006. 5. 22. 13:10

잠에서 깰 때마다 쉼 없이 개구리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밤중이 되면 소리가 잦아드는 법인데 아직도 짝을 구하지 못했는지 숫 개구리들의 구애의 노래 소리는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개구리 소리를 노래라고 보든 울음이라고 보든 그것은 인간의 감정이입일 뿐이겠지요. 개구리는 그저 본능에 따라 울음주머니를 울릴 뿐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사정이 어떠하든 우렁찬 개구리의 합창 소리는 봄을 대표하는 소리입니다. 저렇게 큰 소리가 결코 시끄럽게 들리지 않습니다. 개구리 소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봄의 교향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개구리 소리에 이끌려 논둑길을 논으로 나갔습니다. 모내기를 한 논마다 개구리들로 가득 찼는지 전후좌우 사방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에 잠시 넋이 나갔습니다. 사람 발자국 소리를 경계하는지 처음에는 소리를 그치다가 가만히 서 있으면 다시 요란하게 세레나데를 부릅니다. 아마 일 년 중에서도 생물이 내는 가장 큰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소리는 온 대지를 뒤덮고 하늘로까지 날아올라 갑니다. 가끔 개구리가 아닌 무엇인가가 우는 소리도 들리지만 개구리 집단에 묻혀서 맥을 추지 못합니다. 주눅이 든 그 소리에는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인간이 보신이 된다고 아무리 잡아먹어도, 농약을 쳐서 못 살게 해도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개구리들의 소리는 마치 ‘나 여기 있소’ 하며 인간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너희들이 산을 뭉개고 구멍을 뚫고 바다를 메우고 해도 결코 자연을 정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모아 개구리들이 대표로 외쳐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소리가 하늘에 상달되는 날에는 인간의 머리 위로 불벼락이 떨어질지 모릅니다.


동물 행동의 단순함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많습니다. 인간은 저들이 가지지 못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지혜로 만들어진 문명이란 것의 정체를 들여다보면 가소롭기만 합니다. 개구리 세계에서는 경찰도 없고, 감옥도 없고, 선생도 없고, 개구리 대통령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어느 욕심 많은 개구리가 생겨나 논 한 마지기를 다 독차지하려고도 않습니다.


꿈은 사납고 잠은 여러 번 깨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닫힌 창 사이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는 나를 여러 가지로 반성하게 합니다. 숱한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스스로 잘 났다고 까불대지만 나는 개구리 소리 같은 진실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식적이며 자기 합리화에 길들여진 내 모습이 자꾸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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