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신비체험과 임사체험의 불가사의

샌. 2006. 4. 27. 14:32

인간의 신비한 정신 현상 중에서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종교적 신비체험과 임사체험이 아닐까 싶다.

종교의 창시자들이나 성인들, 그리고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에게서는 그들이 경험한 종교적 신비체험이 늘 따라다닌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하늘로부터 권위를 받은 것으로 암시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돈오(頓悟)라고 부르는 깨달음의 순간도 이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이런 종교적 체험은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힌두교의 요가 수행자들에게서는 이런 체험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오랜 침묵이나 기도, 또는 은둔과 고행을 통한 감각의 제어에서 그런 체험은 순간적으로 강력하게 찾아오는 것 같이 보인다. 이런 신비체험에서는 주로 빛과 소리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런 종교적 신비체험의 특징은 체험 후에 완전히 변화된 사람으로 바꿔진다는데 있다. 이 체험은 당사자의 정신과 혼을 통째로 사로잡는다.

사도행전 9 장에 보면 사울이 기독교인을 체포하러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갑자기 신비한 체험을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이 체험에서도 빛과 소리가 등장하며 이후 사울은 180도 달라진 사람으로 변했다. 이름도 바울로 바꾸고 그의 전도 활동에 의해 지금의 기독교가 탄생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신비체험은 한 인간을 통째로 변화시키며 지진과 같은 가치관의 전환을 가져온다.


임사체험 또한 특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임사체험(臨死體驗)이란 임상적으로는 사망 선고를 받았으나 얼마 뒤 다시 되살아나서 그동안 겪은 경험을 말한다. 1975년 미국의 무디 박사가 사례를 수집해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후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임사체험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임사체험자는 육신으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 나와 자신의 죽음을 위에서 내려다본다. 슬퍼하는 가족을 안타깝게 보기도 하고, 자신의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의 목소리를 생생히 듣기도 한다. 이런 것을 유체이탈, 또는 체외이탈이라고 한다.

둘째, 자신의 육체에서 떨어져 나온 임사체험자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여 빛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에서 체험자마다 다르지만 어떤 빛의 존재를 만난다. 거기서 대부분의 체험자들이 행복과 기쁨과 충만함을 느낀다.

셋째, 임사체험자는 자신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한 순간에 되돌아보게 된다. 그때 죄책감 보다는 삶의 소중함을 배우게 된다.

넷째, 어떤 이유에 의해 다시 육신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깨어난 뒤의 인생관이 크게 변한다. 대부분 체험 이전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되고 관대해 지고,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려고 하고 영혼이나 영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죽음이 끝이 아님을 확신한다.

그 외에 나타나는 특징으로는 마음의 안정, 우주와의 합일감, 모든 것을 알 것 같은 전지감, 시간이 정지하거나 의미를 상실한 느낌, 죽은 사람과의 만남, 사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느낌 등이 보고 되어 있다.

임사체험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빛과 관련된 부분이다. 사람에 따라 신으로, 예수로, 부처로 보이는 빛의 존재와의 만남과 그로부터 받은 메시지는 임사체험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 같다.


종교적 신비체험과 임사체험 사이에는 상당히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빛과 메시지, 저쪽 세계로의 여행 등 큰 줄기는 공통적이다. 아마 뇌를 분석해 본다면 뇌의 특정한 부위에서 생기는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바울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이란 바울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비밀스러운 저쪽 세계로의 여행은 임사체험자들이 경험하는 사후세계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그렇다면 바울의 신비체험도 임사체험의 일종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타나토노트’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자세한 내용은 잊었지만 책에 나오는 영계(靈界) 탐험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임사체험을 확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책에 나오는 공상적인 이야기가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신비체험, 임사체험, 타나토노트 이야기 등에서 공통되는 것은 체외이탈 현상이다. 바울도 셋째 하늘까지 들려 올려진 사건이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고 했지만 이 말은 분명 체외이탈을 의미하는 것 같다. 요가에서도 인체 내에 있는 생명 에너지가 정수리를 통해 빠져나가 우주적 에너지와 합일하는 것을 해탈이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다.

여러 현상에서 보이는 이런 체외이탈은 아직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지 못하는 불가사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체험이 어떻게 해서 생기고, 원인이 무엇인지는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인간이 외부의 물질세계에 대해서는 많은 비밀을 밝혀냈지만, 자신의 내부인 마음이나 뇌의 작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런 특별한 체험들이 사후세계나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한 뇌의 환각 작용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체외이탈이 실재적인 어떤 현상으로 증명된다면 그것은 저쪽 세상의 존재에 대한 또는 영혼 불멸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체외이탈을 통해 겪는 경험이 단순한 뇌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결론 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인간의 뇌에서 이런 신비적 현상을 관장하는 부분이 있어 이 영역이 자극을 받으면 마치 마약에 의한 환상 작용처럼 특정의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약에 의한 환상에서도 임사체험과 같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난다고 한다.

인간의 육체가 죽음과 같은 극한적인 한계 상황이 되면 뇌의 특정 부위가 자극을 받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임사체험이라는 형태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신비체험과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들이 받는 ‘빛’과 ‘빛의 존재’에 대한 경험이 너무나 강렬하여 단순히 유물론적인 해석으로 돌려버리기에는 신비스러운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체험 후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전면적으로 바꿔진 경우가 많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뇌에 저장되어 있던 이미지의 표출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위대한 인류의 스승들의 말씀, 그리고 특별한 경험을 하고 난 뒤의 보통 사람들의 의식 변화에는 앞으로 밝혀질지도 모르는 진실이 들어있음에 분명하다. 우리가 접하는 체험이라는 것은 진실이 남긴 희미한 흔적일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저 넓은 바닷가 모래알 중의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우주는 실재의 극히 일부분일지 모른다. 실재는 지금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지 모른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과 환상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 과연 경계가 있을까? 무엇이 이미지이고 무엇이 실제 경험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진실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현실로서의 죽음이 결코 어둡고 무섭거나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도리어 죽음은 빛과 평화와 안식에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곳에서의 삶 또한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축복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진지하고 아름답게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면서 권리이다. 비록 죽음이 이생에서의 끝이면서 무(無)로의 소멸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신비체험이나 임사체험을 통해 우리보다 먼저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전해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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