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창 밖에 살구꽃이 환하다

샌. 2006. 4. 17. 13:57

텃밭을 일부 정리하고 감자를 한 줄 놓았습니다. 지난주에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로부터 알이 작은 씨감자를 받았는데 눈을 따지 않고 그냥 심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흙을 만지니 감회가 새롭고 기분도 무척 좋았습니다. 무겁던 몸과 마음이 새 기운으로 충전되는 것 같았습니다. 피곤하지만 뭔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올해는 작은 묘목 몇 그루만 심었습니다. 앵두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자귀나무.

여기는 이제야 산수유, 살구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벚꽃은 작은 봉오리가 겨우 보입니다. 그만큼 이 동네는 춥습니다.

제가 심었던 나무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행복합니다. 별로 거두지도 못했는데 나무들은 스스로 자리를 잡고 적응하며 커갑니다. 불평 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스승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물을 받은 몸체가 생기를 띠며 고마워하는 것 같아서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은 자족(自足)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저를 관찰하건대 개인의 불행은 대부분이 남과의 비교에서 비롯됩니다. 욕심이 늘 더 많이 가지라고 하고 그래서 지금의 나를 초라하게 만듭니다. 과욕은 불평을 낳고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된 데는 세상의 책임도 큽니다. 이 사회는 한 마디로 욕망을 부추기는 체제입니다. 그 속에서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기는 그만큼 어렵습니다.

'더 잘' '더 많이'가 개인을 자극해서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을 부족증 환자로 만들었습니다.


행복은 어떤 조건이 아니라 자족하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압니다. 만약 잘난 사람, 부자들한테만 행복이 주어진다면 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할까요? 어느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할 제약은 없습니다.

어제는 부활절이었고, 마침 법정 스님도 길상사에서 ‘봄날의 행복론’을 얘기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행복은 어떤 특정 기회, 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바로 그때랍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있답니다. 온갖 생각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을 때 행복의 싹이 움튼다고 하네요.


이번에 작은 시골에서 드린 부활 미사는 즐거운 축제였습니다. 특히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그만큼 순수해 보이는 신부님 때문에 실컷 웃고 눈물겹게 감동했습니다.

부활이 무엇이냐고요? 부활을 믿느냐고요? 그날 강단 앞에 나갔던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 그 모든 의미가 들어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창 밖을 내다보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흔들렸고 많이 무너졌습니다. 그것은 생각과 행동이 다른 이율배반적인 분열 증세였습니다. 그동안 제 마음 속 깊이 박힌 욕심의 뿌리, 어리석은 환상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거기서 벗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좀더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새로이 이룰 그 무엇도, 다시 찾아야 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의 나’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완성입니다.

창 밖 마당에 피어있는 살구꽃에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비체험과 임사체험의 불가사의  (1) 2006.04.27
꽃씨를 뿌리다  (0) 2006.04.23
물을 넣다  (0) 2006.04.05
베짜타 못  (1) 2006.03.04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0) 200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