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제대로 밥 먹기

샌. 2006. 8. 10. 12:37

‘작은 것이 아름답다’ 8월호에 황대권 님의 ‘션찮은 반찬으로 맛있게 밥 먹기’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어서 글을 부분적으로 발췌, 요약해 봅니다.


음식점에서 정식을 시키면 한 상 가득 찬과 요리가 나오고 밥은 가장 나중에 나온다. 밥을 먹을 때쯤이면 이미 과식 상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은 밥 먹으러 가자 해 놓고는 밥은 조금 먹고 찬만 잔뜩 먹고 오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되어 버렸다. 이것이 육식은 일상화되면서 생긴 식습관이다. 고기에 야채를 곁들여 먹으면 곡기가 없어도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미 고기 맛에 길들여진 몸의 요구를 어쩌지 못한다. 그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상당한 결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찬이 아니라 밥 위주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 반찬은 그저 그런 두세 가지 정도면 족하다. 비밀은 밥에 있다. 유기농 현미잡곡으로 밥을 하여 천천히 씹어 먹으면 된다. 현미잡곡 식사법에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인 요소가 숨어 있다. 어제 저녁 내 밥상을 소개한다. 밥상에 오른 그릇 수는 밥 한 그릇, 반찬 두 그릇, 달랑 세 개뿐이다. 국은 기분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반찬은 왕고들빼기김치와 무장아찌고, 밥은 현미에 온갖 잡곡과 견과류를 섞은 현미잡곡밥이다. 반찬은 집 앞 텃밭에서 캔 것이고, 현미는 자연농법을 하는 후배가 준 것이다. 밥은 현미를 기본으로 하고, 콩과 견과류를 섞어 넣는다. 보통은 열 가지 남짓하지만 많이 넣을 때는 열다섯 가지가 넘기도 한다. 약간 고슬고슬하게 될 정도로 물을 넣고 압력밥솥에 밥을 안친다. 이 가운데 일부 견과나 콩류는 읍내에서 5일장이 열릴 때 길에서 파는 할머니들한테 사온다.


밥이 다 되었으면 먹기 시작한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숟가락을 들기 전에 먼저 이 모든 음식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여기서 하느님은 특정 종교의 신이 아니라 모든 신성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는데, 이 신성은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에도, 부엌에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에도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밥을 먹는다는 것은 밥 속에 깃든 하느님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 같다. ‘여행’이란 짧은 시간에 간단히 끝내는 것이 아니다. 김지하 시인도 ‘밥을 모시는 것은 하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약간 고슬고슬한 밥을 한 숟갈 정성스럽게 떠서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기 시작한다. 흰쌀밥만 먹어온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겠지만 인내하며 계속 씹어야 한다. 내가 씹는 동작은 다른 무엇보다 ‘격렬’하고 ‘황홀’하다. 온 몸으로 씹어본 사람은 씹는 일이 얼마나 격렬한 행동인지 안다. 이렇게 힘이 들기 때문에 리듬을 타고 천천히 씹어야 한다. 음식물을 입 안에 넣고 씹을 때는 온 신경과 에너지를 씹는 일에 모아야 한다. 라즈니쉬 말투로 하면 ‘씹는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눈은 감고 시선을 입 속으로 돌린다.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입 속에 집중하면 입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훤히 보인다. 온전한 곡물 알갱이가 첫 타격에 금이 가면서 옆으로 일그러지더니 곧바로 산산조각이 나는 장면들이 세세히 보인다. 내 입 속에서는 격렬한 창조와 파괴가 연달아 일어난다.

 

곡물의 특성과 맛을 알고 있으면 제각각 다른 곡물들이 잇사이에서 으스러져 여러 가지 맛을 내는 것을 하나씩 알 수 있다. 현미 씨눈이 어금니 사이에서 갈릴 때에 나는 고소한 맛, 녹두와 팥이 으스러지면서 내는 구수한 맛, 조의 까실한 맛, 수수의 텁텁한 맛, 보리의 미끄덩한 맛, 된장 콩의 비릿함, 밤의 달콤함, 잣의 기름짐, 율무의 사각거림, 은행의 씁쓰름함....,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침 속에 녹아들어 한데 어울리면서 내는~~ 맛! 이런 맛과 미묘한 움직임을 느끼려면 명상하듯 천천히 오래 씹어야 한다. 오래 씹어야 침이 많이 나오고, 침이 많아야 소화가 잘 되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밥을 먹을 때 보통 100번은 넘게 씹는다. 100번이 넘으면 침이 홍수같이 스며 나와 부서진 곡식들과 함께 거의 ‘플라스마’ 상태가 된다. 이때가 바로 반찬을 먹는 시점이다. 이것이 바로 ‘플라스마 식사법’인데, 입에 플라스마 상태의 곡기를 머금고 조금 싱겁게 만든 반찬을 먹으면 찬의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이 식사법에서는 반찬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이미 밥을 통해 충분히 맛을 느낀 뒤라서 반찬의 역할은 줄어들고 션찮은 반찬으로도 맛있는 식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도를 닦는 수행자들이나 소박한 밥상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의 식사법이다.


입 속에 들어온 음식물을 정성스럽게 씹는 행위는 무속으로 치면 일종의 강신무라고 할 수 있다. 씹고 씹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평범했던 곡식의 맛이 차원이 전혀 다른 천상의 맛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물론 이것을 분해된 음식물과 침의 물리화학적 작용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그것만으로 설명이 모자라는 정신적 고양상태가 존재한다. 뭔가 흘러넘치는 사랑이랄까, 감사 또는 은총이랄까, 아니면 무언가 커다란 ‘하나’ 속에 안긴다고나 할까.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씹어 삼키면 이런 느낌에 다가갈 수 없다. 씹는 행위 하나하나에서 그 음식물을 만든 사람의 정성과 사랑, 그리고 그것이 내게 오기까지의 수많은 여정을 음미하는 것이다. 음식물의 생산자와 생산방법, 이동경로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어야 이런 일이 가능하다.

 

이런 상상을 하며 밥을 먹으면 물리화학적인 맛이 정신적인 맛으로 승화된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 된다. 모신다는 것은 대자연과 이웃의 사랑 안에 포근히 안긴다는 것이다. 하루에 두 번씩 이런 은총을 누린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런 식사를 하루에 세 번씩 하기에는 좀 무리다. 그리고 두 번만 먹어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플라스마 식사법의 구성요소는 자연식품, 씹기, 침, 그리고 명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네 가지가 어우러져 ‘션찮은 반찬’을 가지고도 기막힌 맛으로 우리 몸과 마음을 살찌운다. 흔히들 ‘음식은 몸의 양식이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지만 사실로 말하자면, 음식은 ‘잘만 먹으면’ 몸과 마음의 양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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