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재미있는 라디오

샌. 2006. 8. 18. 13:29

여기는 일부러 TV를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도 되지 않습니다. TV를 안 보고 인터넷을 안 해도 별 아쉬움을 못 느끼니 다행히 저는 아직 문명에 덜 중독이 된 모양입니다. 대신에 세상과의 통로는 라디오입니다. 라디오는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듣는 편인데, 다이얼은 MBC FM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침에는 ‘여성시대’를 가끔 듣고, 저녁에는 8시에 시작되는 ‘재미있는 라디오’와 9시 뉴스를 듣습니다. 그 시간이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거나, 먹고 난 뒤의 휴식시간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낮의 열기도 식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거실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 재미가 무척 쏠쏠합니다. TV는 눈을 뜨고 집중해야 하지만 라디오는 눈을 감아야 도리어 제격입니다. 비슷한 정보를 전달받을 때 라디오가 훨씬 더 편안하고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인간적이라는 것은 TV 보다는 라디오에서 더 진한 감동과 즐거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부모와 떨어져 생활을 하는 쓸쓸한 단칸방에서 라디오는 내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제목은 모두 잊었지만 시간을 맞추어 들었던 일일연속극들과 특집극들이 있었고, 손에 땀을 쥐며 스포츠 중계에도 열중했습니다. 그 중에서 일요일 저녁에 하던 ‘재치문답’이라는 프로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을 보니 저의 애청 프로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 분의 재치 박사들이 나와서 주어진 단어를 코믹하게 풀며 웃기던 프로였는데 무척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고향 마을에는 라디오가 있는 집이 한 집도 없었습니다. 마을 잔치가 있는 날이면 면사무소에 다니시던 아버지가 라디오와 스피커를 빌려 오셔서 동네사람들이 전부 들을 수 있도록 틀었습니다. 지금도 초가지붕 위로 높이 세워져있던 마름모꼴 안테나가 선연히 기억납니다. 어른들은 라디오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것이라 놀렸는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조그만 상자 안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 정말로 그 안에 난쟁이 사람들이 들어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여기서 내가 듣는 ‘재미있는 라디오’라는 프로는 최양락 씨가 진행하는데 주로 인기인의 성대모사를 통해 세상사를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3김퀴즈’라는 코너를 재미있게 듣습니다. 늘 같은 형식이지만 3김의 특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내고 있어 결코 식상하지 않습니다. 각자 머릿속으로 연상을 통해 스스로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것은 TV가 가지지 못한 라디오만의 장점입니다.

 

TV가 등장하며 라디오 시대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라디오에 사연을 올리며 울고 웃는 애청자들이 많은 걸 보니 TV와는 다른 독립된 매체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 같습니다. TV가 가질 수 없는 라디오만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지요. 라디오를 들으며 자란 세대여서인지는 몰라도 저 같은 경우는 라디오에 훨씬 더 애착이 갑니다. 도시에서도 안방 머리맡에 라디오를 갖다 놓고 들으려고 했지만 TV의 자극적인 화면에 끌려 잘 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경쟁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라디오는 꿋꿋하게 살아남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제 터에서도 저는 라디오를 고집하겠습니다. 뭔가 그것이 더 인간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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