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하늘마음농장

샌. 2003. 9. 19. 15:40
어제 저녁 TV에서 울진으로 귀농한 한 가족 얘기가 나왔다.
내 컴 즐겨찾기에 이분들의 홈페이지(`하늘마음농장`)가 올려져 있어 가끔 들어가 보곤 했는데 직접 화면으로 만나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부의 귀농 이유를 그분들 홈페이지에서 옮긴다.

살다보면 별일도 다 있다. 남편의 귀농얘기가 그 경우이다.
어느날 "귀농하고 싶은데…." 물론 난 흘려넘겼고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그러나 `귀농`이라는 단어를 어디 말 붙일 수 있는 곳이라면 다 붙이며 내 머리에 박으려 들었다.하루는 마주 앉아 물었다. 어쩌다 그리 되었냐고. 회사에서 우연히 전국귀농운동본부 사이트를 보게 되었단다.
춘천에 늙으면 텃밭 일구며 살기 위해 사놓은 땅도 있고 해서 교육을 받고 싶더란다.그래서 그때 내가 그건 허락했었다. 어차피 연로해지면 가니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그런데 이렇게 새파란 사람이 간다는 거였다.
얘기들어 볼 거리도 아니라며 안들은 걸로 하겠다고 했다.
어느날 편지가 왔다. 그이가 보낸. 거기에는 귀농이유가 알사탕 매달려 있듯 줄줄이 엮여 있었다.
첫째, 남을 밟고 내가 올라가야 하는 사회, 이기적인 생각과 잔머리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사회가 싫었단다. 게다가 그 생활을 정년퇴직 때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너무 허무하더란다.
둘째, 남자로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죽고 싶단다. 그저 시계 추처럼 삭막한 공기를 끌어안고 하루를 시작해서, 찌든 도시의 찌꺼기를 집까지 지고 와야 하는 도시생활에 염증이 난단다. 더 높은 직위, 더 큰 아파트, 더 좋은 차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셋째, 아이들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위에서 계획된 스케줄대로 이 학원, 저 학원 기웃거리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자연에서 흙을 밟고, 흙을 만지며 자라게 해야 참 사람이 된단다.
그래서 귀농은 반대를 해도 하긴 하는데 되도록 동의를 얻고 싶단다. 거의 협박에 가깝다고나 할까.
다시 두 번째로 마주 앉았다.
"당신만 일이 있는게 아니다. 나도 내 일이 있고, 또한 소중하다. 자신이 하는 싶은 일 하고 싶다고 하면 내 일 역시 놓고 싶지 않은 일이다"라고 .
시간이 흐를수록 언성만 높아질 뿐....
이쯤되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시어머님 말씀대로 이혼하던지(시어머님은 "그 놈 미쳤으니 니 이혼해라"하셨다), 따라가던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난 여러 날을 새우기도 했다.
남편은 지금까지 일에 관한한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귀농해도 가장으로서 실망시키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존경하는 성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법정스님이 강조하시는 무소유적인 삶에 대해선 늘 가슴을 열고 있던 터라 새로운 집착에 대한 끌림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 문제는 그이 생각과 일치했다.
이 가방, 저 가방 쥐어주며 학원 늦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하는 자신이 늘 불만이었다.
그 와중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얼마 후 그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삶은 이리 돌아가는구나` 하는 허무한 생각에 근본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내 일이 뭐가 중요하고, 전공이 뭐가 대단한가?
결국 1999년 12월 23일 귀농을 허락했다. 내 허락이 있고 사표를 냈으나 수리되지 않았다.
귀농 결정하고 나니 바쁜 사람은 나!
부동산사무실에 아파트 내놓고, 춘천 땅 내놓고, 귀농정보 알기 위해 이 책, 저 책 읽고, 아이들의 문화충격을 줄여주기 위해 이번에는 내가 아이들을 세뇌교육시켜야 했다.
이제 집도 팔리고, 땅도 팔리고, 귀농지도 구입했는데 정작 사표는...
결국 나 먼저 산골로 옮겨 앉았고, 남편은 현대자동차 소장의 자리를 참새 깃털 털듯 툭툭 털고 나중에 산골에 합류했다.

이분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겪었을 마음 고생은 어떠했을까?
TV 화면으로 웃고 있는 모습 뒤에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었을 것인가?
보통 도시인들이 시골 생활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도 이제 서서히 깨우쳐 가고 있다.

그리고 이분들이 부러운게 또 하나 있다.
거처가 깊은 산골의 외따로 떨어진 집이고, 그리고 예전 집을 약간만 수리해서 살고 있는 모습이다.
초보가 시골 동네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은 힘드는 일이다.
그것도 번드르하게 새 집을 짓는다는 것은 더욱 모험이다. 투자가 많으면 많을 수록 적응도 더욱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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