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도연명의 귀거래사

샌. 2003. 9. 14. 08:40

도연명(陶淵明).....

도연명의 시를 처음만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한문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저 멋있다고만 느낀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이라는 구절과, 대표작이 `歸去來辭`인 전원시인이라는 정도로 소개받은 기억이 난다.
그 후 한참 지나서그분의삶과 시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단순히 전원시인이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그분의 깊은 내면세계에이끌리게 되었다.

나이 41세(405년)....
팽택현령(彭澤縣令)을 사직하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소통(蕭統)의 `陶淵明傳`에는 그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한 해가 끝날 무렵 마침 군(郡)에서 파견한 독우(督郵)가 현(縣)에 도착하니 아전이 청하길, "꼭 허리띠를 하시고 뵙도록 하십시오." 하였다. 연명은 탄식하며 "내가 어찌 다섯 말의 미곡 때문에 촌구석의 어린애를 향해 허리를 굽히겠는가"하고는 그날로 인끈을 풀어 관직에서 사퇴하고 `歸去來兮辭`를 지었다.

 

이 장면을 상상하며 통쾌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현대를 사는 많은 직장인들의 꿈이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찾아 흔쾌히 사표를 던지고떠날 수 있는 용기, 우리를 무수히 발목잡고 있는 올가미들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길 떠날 수 있는 결단.

그러나 그 길은 안락의 길이 아니라 힘겨운 고행의 길임을 도연명의 삶이 보여주고 있다.

歸!

돌아섬이라는 이 글자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이때까지 살아온 삶의 방향 전환, 그것은 종교적 의미에서의 `회개`나 `出家`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울적하고 흔들릴 때 그의 시를 읽는다.

 

< 귀거래사 서문 >

 

우리 집은 가난해 밭을 갈아도 자급할 수 없다. 어린애들은 집에 가득하나 항아리에는 저장해둔 곡식이 없어 생활할 밑천을 마련할 방도를 알지 못하였다. 친구들은 내게 관리가 되라고 많이들 권하니 마음을 열어 뜻을 두기도 했지만 구할 방도가 없었다. 마침 진 왕실이 회복되어 제후들이 은혜와 사랑을 덕으로 삼으니 숙부는 내가 가난해 고생한다며 드디어는 작은 고을에 기용되게 하였다. 당시 전란이 끝나기 않은데다 멀리서 벼슬하기를 마음에 꺼렸으나 팽택은 집에서 백리 거리이고 공전(公田)의 이로움이 족히 술을 담글 만했으므로 문득 그 자리를 구하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다 그만 두고 돌아가고 싶은 뜻이 생기고 말았다. 왜 그러했던가? 성질이 진솔함을 좋아하니 억지로 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굶주림과 추위가 비록 절박하지만 자기를 어김은 병이 되고 만다. 일찍이 인사를 따른 것은 다 입과 배의 부림을 당한 것이다. 이에 슬프고 강개한 마음이 들었고 평소의 뜻에 깊이 부끄러웠다. 그런데도 오히려 일 년이나 있기를 바랐으니 마땅히 의복을 싸 밤중에라도 떠났어야 했다. 머잖아 정씨에게 시집간 동생이 무창에서 상을 당하니 급히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사면하고 관직을 떠났다. 중추부터 입동에 이르기까지 관직에 있은 것이 80여일이다. 일에 인연하여 마음을 따른 바, 글의 제목을 `귀거래혜`라 한다. 을사년 11월.

 

< 본문 >

 

돌아가야지!

논 밭이 묵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야지

마음은 스스로 몸의 부림 받았거니

혼자 근심에 슬퍼하고 있겠는가

지난 날은 다시 되돌릴 수 없으나

앞으로는 후회 하는 일 없으리라

길을 잘못 들었으나 아주 멀지는 않다

지난 날은 후회지만 이제부터 바르리

고운 물결 흔들흔들 배를 드놓이고

바람은 가벼이 불어 옷자락을 날리네

지나는 이에게 앞길 물어 가야 하니

희미한 새벽빛에 절로 한숨이 나네

어느 덧 저 멀리 집이 바라다 보이니

기쁜 마음에 달리듯이 집으로 간다

사내아이 종 나와 반가이 맞이하고

어린 아들 문 앞에 기다려 서 있네

세 갈래 오솔길에 잡초 우거졌어도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네

어린 아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항아리 가득히 술이 나를 반기네

술병과 술잔 끌어당겨 혼자 마시며

뜰의 나무를 지그시 보며 미소 짓는다

남쪽 창에 기대어 편하게 있노라니

작은 방이지만 안락하기 한량없다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풍치가 있고

문은 나 있으나 늘 닫아 두고 있다.

지팡이 짚고 가다가는 쉬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 들어서 멀리 바라보네

구름은 무심히 골짝을 돌아 나오고

날다 지친 저 새 돌아올 줄을 아네

저 해도 어스름에 넘어가려 하는데

서성이며 홀로 선 소나무 쓰다듬네

돌아왔네!

사귐도 어울려 놀음도 이젠 그치리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다시 수레에 올라서 무엇을 구하겠는가 ?

친한 이웃과 기쁘게 이야기 나누고

음악과 글을 즐기며 시름을 잊으리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니

서쪽 밭에 나가서 일을 하여야겠네

때로는 천막을 두른 수레를 몰아서

혹은 외로운 배의 삿대를 저어서

깊고 굽이져 있는 골짝을 찾아가고

험한 산길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네

물오른 나무들은 꽃을 피우려 하고

샘물은 퐁퐁 솟아 졸졸 흘러내리네

모두가 철을 만나 신명이 났건마는

나의 삶 점점 더 저물어 감 느끼

다 끝났네

세상에 몸이 다시 얼마나 머무르리

가고 머뭄을 자연에 맡기지 않고서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 하는가

부귀는 내가 바라던 바도 아니었고

신선 사는 땅은 기약할 수 없는 일

날씨 좋기 바라며 홀로 나아가서는

지팡이 세워두고 김 매고 북돋우네

언덕에 올라가서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보네

자연을 따르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천명을 누렸거늘 더 무엇 의심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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