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자식의 은혜

샌. 2012. 7. 24. 11:33

"당신은 전생에 자식한테 빚을 엄청나게 졌는가 봐." 종종 아내에게 농으로 하는 말이다. 그만큼 아내는 자식 보살핌이 극진하다. 출가한 두 딸이건만 아직 품 안에 있듯이 이런저런 염려가 가득하다. 반찬 하나라도 더 해 주지 못해 마음 아파한다. 아마 운전을 할 줄 알았다면 수도 없이 딸 집을 왕래했을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집착인데, 아내 말로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이건 부모 역할의 반도 못 된단다. 어찌 되었든 못 말리는 모성이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자식에 대한 애착이 남자보다 강하다. 자식이 성인이 되었으면 제 살 길은 제가 알아서 가도록 지켜보면 될 텐데 간섭과 보살핌이 그치지 않는다. 시집장가 보내도 마찬가지다. 부부다툼에서 제일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자식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남자가 볼 때 여자의 자식사랑은 불가사의하다.

 

대부분 집에서 자식의 존재는 가정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기쁨과 웃음의 많은 부분이 자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아이가 크면서는 근심과 걱정이 기쁨과 웃음자리를 대신한다. 부모자식 관계를 천륜이라지만 세대간의 충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 부모나 자식은 인간적으로 성숙해 나간다. 자식을 기르면서 우리는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런 점에서 '자식의 은혜'라는 말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전생에서 빚진 사람이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통해서 전생의 빚을 갚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훨씬 빚을 많이 진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이 여자로 태어나는가? 전생의 논리라면 자식한테 하는 서비스는 전생의 빚을 갚는 반대급부의 행위가 된다. 이 또한 '자식의 은혜'다. 이러면서 인간은 끝없는 업의 수레바퀴를 굴린다.

 

어찌 되었든 한국만큼 자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자식을 결혼시키고 나서도 아프터 서비스는 그치지 않는다. 세태가 그렇다 보니 자식마저 이젠 당연히 기대를 한다. 손주를 보게 되면 그것도 부모 몫이다. 모른 채 할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많은 한국의 부모들은 늙어서까지 자신의 삶을 찾지 못한다. 손주 보기를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자식의 은혜'로 고맙게 여겨야 할까? 자식을 결혼시켰지만 이런저런 신경 쓸 자리는 더 많이 늘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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