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 가장 사나운 짐승 / 구상
지난번 중국에 다녀올 때 공항에서 안내자가 흉기가 될 만한 물건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누군가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흉기가 아닌가?"
어렸을 때 사랑방에 모인 우리를 보고 할아버지가 물었다. "산에서 뭘 만나면 제일 무섭겠니?" 아이들 대답은, 호랑이, 늑대, 귀신 등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엉뚱한 대답을 하셨다. "사람이란다." 그때는 왜 사람을 제일 무섭다 했는지를 알지 못했다.
사람만큼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동물도 없다. 우리가 흔히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욕을 하지만 짐승의 행동은 본능의 순수성이다. 먹고, 낳고, 하는 일 외에는 평화롭게 쉰다. 술수를 부리고 요사스런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하물며 자기 이익을 위해 동족을 죽이는 일은 없다. 인간의 내면에 깃든 어두운 본성이 지능과 결합하여 더 큰 악을 만들어 낸다. 그걸 통제하지 못하면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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