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을 봄부터 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마침 J가 ‘시네코드 선재’에서 지금도 상영하고 있다고 알려 주어서 여럿이서 보러 갔다. 하루에 조조로 한 번만 상영하고 있었고 전체 관객도 10여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장사가 안 되는 이런 영화를 소중하게 지켜주고 있는 영화관 측이 고마웠다.
소박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톰과 제리 부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잔잔하게 전개된다. 그렇지만 밝고 즐거운 영화는 아니다. 톰과 제리 가족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은 대부분이 행복하지 못하다. 대표적인 이가 제리의 친구 메리다. 그녀의 성격적인 결함이 드러나긴 하지만 외로워하고 아파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음을 슬프게 한다. 아내를 잃고 망나니 아들마저 속을 썩이는 톰의 형 로니도 마찬가지다. 그의 무뚝뚝하고 우울한 얼굴 표정이 영화를 한층 무겁게 한다. 톰의 친구인 켄,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아줌마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톰과 제리의 행복마저 결코 행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감독이 행복의 조건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행복을 누리는데 능숙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음을 영화는 은연중에 비친다. 톰과 제리는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며 이웃을 배려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 남는 시간은 텃밭을 가꾸며 친환경적으로 살려고 한다. 반면에 메리는 수다스러우며 감정 관리가 잘 안 된다. 켄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무척 자기중심적이다. 그녀의 생각도 독선적이고 일방적이다. 메리의 불행 대부분은 스스로에게서 유발된 것으로 보인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보다는 성격적 요인이 크다는 것을 메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외로움과 그리움이 인간 존재의 본질임을 확인하게 된다. 친구나 부부, 인간관계 등으로 그것이 원만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행복과 함께 불행이 존재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 세상이다. 같은 시대를 살지만 또한 각자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리고 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찾아온다. 슬픔과 불행도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어찌 보면 쓸쓸함이야말로 우리 삶의 본질이고, 행복은 때때로 찾아오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톰과 제리보다는 메리에게서 안타까움과 함께 더 인간적인 면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 의미를 갖는다. 영화에서 불행하게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외로움에 갇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러나 관계 맺기가 꼭 사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충만한 인생을 위해서는 자연과의 관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톰과 제리는 텃밭을 가꾸며 자연과도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평범하지만 행복한 한 쌍이다. 그렇다고 결혼이 행복의 전제조건이라고 일률적으로 말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묘하게 결혼한 사람은 행복하게 나오고, 독신이거나 사별한 사람은 불행하게 나온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바로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온갖 나약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감독의 이 말이야말로 이 영화에 어울린다. 무언가의 교훈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특별히 나약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배여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메리의 슬프고 외로운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행복한 친구 가정의 식탁 한쪽에서 느꼈을 그녀의 외로움이 그 표정 속에 다 담겨 있다. 그녀는 결국 일어설 것이라고 믿고 싶다. 친구의 행복한 가정이 그녀의 도피처가 되지는 못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그녀에게도 언젠가는 따스한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로니의 얼굴도 활짝 펴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