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위험한 상견례

샌. 2011. 6. 18. 14:51


재미있게 봤다. 배경은 1980년대, 한창 영호남 사이의 지역감정이 고조되어 있던 때다. 전라도 청년 현준과 경상도 처녀 다홍은 서로 사랑한다. 그러나 양쪽 집의 아버지들은 상대 지역 사람을 배우자로 맞는 걸 절대 반대한다. 과거의 아픈 상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준은 서울 사람으로 위장하고 부산의 다홍 집을 찾아간다. ‘위험한 상견례’는 이런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코믹하게 그려낸 영화다.

 

이 영화는 과거의 영호남 갈등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두 지역은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댔다. 결혼은 아예 생각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나도 그 시대에 결혼한 영호남 커플이다. 영화와 달리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의 결합이었다. 영화만큼 극렬한 반대는 없었지만 두 지역의 차이점 때문에 심적 부담을 느낀 건 사실이었다. 그런 점이 경상도와 전라도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했다. 지역 갈등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이만큼 부담 없이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리가 앓았던 한 시대의 편린을 볼 수 있으며 두 지역의 맛깔 난 사투리를 즐기는 재미도 있다.

 

그렇다고 단순한 오락 영화만도 아니다. 뭉클한 장면도 있고 명대사도 많다. 경상도가 오랜 기간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전라도는 소외된 약자였다. 그 틀을 깨부수는 장면은 통쾌하다. 전라도 출신임을 밝히고 집을 나가면서 김수미가 이렇게 말한다. “전라도가 뭐 어쨌다고. 게장 해주면 잘만 쳐 먹더라.” 해태껌을 안 파는 부산 가게도 나오는데 실제 당시에는 경상도 차 번호판을 달고 전라도에 가면 기름을 넣을 수 없다는 말도 돌았다. 우물 안 개구리식의 편견에 사로잡혔던 시기였다.

 

소재의 민감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체적으로 가볍고 유쾌하다.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렇게 웃어본 건 오랜만이었다. 다홍 역을 맡은 여주인공이 이시영인데 최근에 열린 복싱 대회에서 우승을 해서 화제가 된 여배우다. 젊은 배우들의 조금은 미숙하게 보이는 연기도 귀엽다. 교훈이나 의미를 따지지 말고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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