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 )으로 맺어진 관계다. ( ) 안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사랑, 이라고 말하면 땡이다. 순진하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다. 법륜 스님에 따르면 정답은 이기심이다. 사람들은 결혼하기 위해 상대를 고를 때부터 베풀기보다는 덕을 보려고 한다. 겉은 사랑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계산과 거래다. ‘결혼할 때 여러분의 속마음은 어떻습니까?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남자는 여자에 대해, 여자는 남자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 봅니다. 이때의 근본심보는 덕을 보자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돈이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떤가, 지위는 높은가, 외모는 아름다운가, 이렇게 따져가며 이러저리 고릅니다.’
법륜 스님이 쓴 <스님의 주례사>는 특히 부부관계에서의 인간의 욕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스님은 ‘사랑’의 허상 대신 ‘자신을 바로 보라’고 말한다. 나를 바로 본다면, 내 욕심을 안다면, 상대에게 실망하고 미워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책 이름은 주례사지만 신혼부부에게보다는 차라리 갈등 많은 기혼의 부부에게 더 적당한 책이다. 실제로 그런 상담 사례들이 많이 나온다.
인간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상황 탓이라기보다는 본인의 마음 때문이다. 결혼을 해서, 남편이 말썽을 부려서 불행한 게 아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내 자신이 문제다. 고통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말라. 생각과 관점을 바꿈으로써 건강한 삶과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수행과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화를 잘 내는 남자라면 ‘오늘부터 화를 안 내겠다’는 것을 수행의 과제로 삼아보라고 권한다. 평소 자식에게 화를 냈다면 자식을 탓하기 전에, 자식이 무슨 짓을 하든 그걸 보는 내가 화가 나는지 안 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 공부다.
사랑이란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 그 대가로 당신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 집착이고 욕심이다. 서로의 욕심, 서로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그에 따른 부정적 과보를 받아야 한다. 이게 세상의 이치다. 사랑이나 결혼, 배우자나 자식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짐을 벗으면 가벼워진다. 한 마디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변덕스런 날씨와 같다. 햇살이 쨍쨍 나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폭우가 쏟아진다. 그러다가 금방 맑아진다. 또 어느 날은 흐릿한 날씨가 하루 종일 계속되기도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게 중요하다. 오늘 농약을 치려고 준비해 놨지만 갑자기 비가 오면 뒷밭에 고추모종을 내면 되고, 깨 옮겨 심으려고 준비해 놨지만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 논둑의 풀을 베면 된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면 되고, 많이 오면 비옷을 입으면 되고, 너무 많이 오면 외출을 삼가고 집안일을 하면 된다.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는 걸 인정하고 날씨에 관계없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게 현명한 자세다. 이것이 인생의 지혜라고 스님은 말한다.
인생사에 대한 스님의 설명은 단순명쾌하다. 해법이 너무 간단해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라는 권고는 꼭 새겨들을 만하다. ‘우리는 매순간 깨어 의지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살아갑니다.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내 습관, 카르마가 삶의 주인이지 내 자신이 삶의 주인은 아닌 거예요.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운명의 흐름에 떠내려가는 존재에 불과해요. 바로 이런 존재를 중생이라고 합니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카르마가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해요. 습관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늘 깨어서 삶을 살아야 해요. 마음의 눈을 뜨고 실상을 보세요. 이때 비로소 우리는 지혜로워지고,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책 제목이 <스님의 주례사>이니 결혼하는 청춘남녀를 위한 충고가 없을 수 없겠다. 결혼생활 잘 하려면 상대에게 덕 보려고 하지 말고 ‘손해 보는 것이 이익이다’는 것을 마음속에 명심하라. 베풀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 가는 사람 아무 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안 생긴다. 스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진다. ‘결혼할 때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해요. 첫 번째는 내가 사랑하고 내가 좋아할 뿐이지 상대에게 대가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안 맞는다는 것을 전제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출발할 때는 양쪽이 맞는 건 10퍼센트고 안 맞는 게 90퍼센트에서 출발해서 결과는 공통점 90퍼센트, 차이점 10퍼센트로 목표를 만들어 가면 됩니다. 서로가 맞추는 방법 중 제일은 내가 전적으로 상대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자신을 탁 내려놓고 “예, 예” 하면서 맞추는 방법인데,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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