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신을 위한 변론

샌. 2011. 6. 2. 16:44

서구에서는 지금 무신론이 유행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스나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쓴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이 있다. 이런 종류의 저서들은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나도 그중 몇 권을 읽어 보았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지나치게 편파적이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깊이가 부족한 것도 흠이었다.

그런 면에서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의 <신을 위한 변론>은 객관성을 갖추고 있고 학문적 깊이도 상당하다. 원제는 <The case for God>이다. 저자는 수녀로 살다가 환속해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학자다. 그리고 종교간의 화해와 협력을 이끌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종교와 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종교와 사상사를 관통하면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인간이 가진 신 개념은 오랜 세월 수많은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다.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전능한 창조주, 제 1원인, 초자연적 인격으로서의 근대의 신은 최근에 나타난 개념이다. 우주만물을 설계하고 인간사에 간섭하고 죄를 벌하고 기도에 응답하는 신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역사의 긴 기간에서 신은 어떤 말로도 표현 불가능해서 오직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종교는 관념적 교리들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기 위한 실천적 수련이었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신이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며 오직 헌신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신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종교는 실천적 수련이며 타인과 같이 느낄 줄 아는 실천적 공감임을 저자는 책 전편을 통해 강조한다. 종교적 통찰은 관념적인 사색이 아니라 영성 수련과 헌신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나온다. 그런 실천 없이 종교적 교리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참된 종교적 삶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의 우상들’을 넘어서려는 지적인 노력뿐 아니라 자기중심적 사고를 넘어서게 해주는 공감의 삶 또한 필요하다. 그것이 초월적 통찰에 이르는 길이라고 다양한 종교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종교는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였다. 이것은 종교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의 본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도나 중국, 서아시아의 현자들이 말한 대로 종교는 관념적 믿음이 아니라 실천적 활동이었다. 일련의 교리를 믿으라고 하기 보다는 열심히 수련하기를 요구했다. 그런데 이런 종교의 본질이 근대 이후에는 잊혀져 가고 있다. 기독교는 단순한 믿음의 종교로 전락했다. 신의 뜻이 성서에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고 따르면 된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복음주의, 근본주의 기독교 신앙으로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역사의 오랜 기간에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들 모두 계시된 진리를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상징적인 것으로 여겼고 성서는 문자 그대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어 새로운 통찰로 이어졌다. 고대로부터 종교의 핵심은 문자에서 벗어나 속내를 뚫어보는 것이었고, 우주의 근원적인 힘에 대한 감각이었다. 현대인은 그런 통찰과 감각 대신에 머리와 교리로 종교를 이해한다.

이 책은 신과 종교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마치 높은 봉우리에 올라 내려다보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옹졸한 시각을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신 개념이 우리 시대의 의식을 반영하는 특정한 것일 뿐이라는 것만 이해해도 종교를 대하는 마음이 좀더 넓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신이 존재하는지, 신의 속성은 무엇인지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모름, 신비, 침묵이라는 더 심층적 차원에 닿을 것을 요구한다. 라너(K. Rahner)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계의 다른 존재들을 알고 선택하고 사랑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며 모든 특정한 존재들을 넘어서고자 할 때 우리는 언어와 개념과 범주를 초월하는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도저히 설명할 길 없는 그 신비가 바로 신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도 비슷하다. 타인과 같이 느낄 줄 알며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실천적 공감이야말로 종교의 최고 덕목이자 참된 종교의 시금석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종교와 신에 대한 인간의 요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신은 죽을 수 없다고 저자는 낙관한다. 다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특정의 신 개념은 변할 것이고 진화해 나갈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전근대적 유신론을 뛰어넘어서 지금의 이 복잡한 현실과 요구들에 진정으로 답해줄 수 있는, ‘신’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의 말미에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삶의 유한성, 고통, 슬픔, 삶의 불공평함에 대한 분노 등 우리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현실 문제에도 불구하고 새 종교는 우리를 에고에서 벗어나 창조적으로, 평화롭게, 즐겁게 살아가도록 도와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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