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생활의 발견

샌. 2011. 7. 8. 12:39

임어당(林語堂)의 <생활의 발견>(The Importance of Living)을 다시 읽었다. 거의 40년 만이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대학생 때였는데 당시에 무척 감명을 받았다. 친구 Y와도 독후감상을 나누며 저자가 쓴 삶의 태도에 같이 공감했다. 그러나 젊었던 그때는 나중에 나이가 들면 이런 식의 삶이 멋있을 것 같다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유유자적의 동양적 인생관을 찬양하는 이 책의 내용을 청춘이 실천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보겠다고 다짐한 것 같은데 이제야 실천하게 되었다.

같은 책이라도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40년 전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저자의 말이 내 속으로 스며든다. 바로 현재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그때엔 감동적이었던 구절이 지금 다시 읽어보니 별로인 부분도 있다. 고루하고 보수적인 내용도 발견된다. 어떤 책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잘 구분되지 않는데 이 책은 세세한 것까지 기억나니 나에게는 특별하다.

임어당은 삶의 철학자다. 현실적 삶을 도외시한 관념의 철학을 반대한다. 현학적인 지식은 우리를 구할 수 없다. 철학이 삶의 기쁨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죽은 뒤의 세계를 묻는 질문에 공자가 답하기를 생도 아직 모르는데 사후를 어찌 알겠느냐, 며 무시한 태도와 비슷하다. 임어당은 가장 이상적인 삶을 중국의 전통에서 찾는다. 바로 한적(閑寂)과 중용(中庸)이다. 저자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이러한 가치가 상실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생활의 발견>을 쓸 당시와 지금의 중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미국으로 대표되던 현대문명을 비판하던 임어당이 지금의 중국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임어당은 즐거움의 철학자다. 삶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시보다는 돼지고기를 택할 것이며, 노릇노릇하게 타서 씹으면 바삭바삭하는, 고급 소스를 발라서 구운 살코기 한 조각이라면 시시한 철학쯤은 집어던져도 좋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쾌락주의자로 보이지만 저자의 사상은 노장과 도연명에 닿아 있다. 문명을 비판하고 일속에 빠져 허둥대는 현대인을 조롱한다. 무엇에건 구속되는 걸 싫어한 자유인이기도 했다.

이 책은 유쾌하고 신선하다. 특히 나 같이 뜬 구름 잡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네가 딛고 있는 땅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균형감각을 잡아주는 고마운 책이다. 대학 시절에 칸트와 헤겔 같은 숲속 미로를 헤맬 때 <생활의 발견>은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었다. 땀을 식히며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긴 세월이 흘러 다시 옛 책을 접했다. 책의 거울을 통해 보건대 내가 변한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걸 평가 절하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제 한적(閑寂)을 실천해 볼 나이는 되었다. 임어당의 말처럼, 사람이 만일 이 세상을 한 편의 시(詩)로 생각한다면 그 생애의 황혼녘을 가장 행복한 때라고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죽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여 오래 살려고 하는 일도 없고, 오히려 자진하여 노경이 오는 것을 기다려 생애 가운데 가장 좋고 즐거운 시절을 조용히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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