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순례의 길

샌. 2011. 7. 18. 19:35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리처드 기어(R. T. Gere)의 사진전 ‘순례의 길’을 보았다. 그가 티베트 불교에 심취해 있고 티베트인들의 인권과 문화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작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최근에 알았다. 지난달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사찰을 둘러보기도 했다. 티베트 불교와 비교해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순례의 길’은 그가 티베트, 네팔, 몽고 등 불교 사찰과 유적지를 순례하며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전부 흑백사진이다. 그러나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은 눈에 설다. 불교적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겠지만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단조로운 티베트인들의 삶에서 불교가 주는 생기와 활력을 보고 싶었다. 또 건조하지만 웅장한 대자연의 모습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사진들은 기대에 어긋났고 분위기는 어둡고 쓸쓸했다. 다만 서양인으로서, 더구나 유명 영화배우로서 동양불교에 대한 그의 영적 여정은 고귀하고 아름답게 빛나 보였다.

 

전시회장에 있던 그의 인사말을 옮긴다.

 

다루기 힘든 것들은 우주만큼이나 무한하다.

그것들을 모조리 정복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분노의 생각 하나만이라도 정복한다면

이는 모든 적을 물리치는 것과 같으리.

- 샨띠데와[寂天]

 

불교적 시각에서 가장 큰 무지는 세상이 보이는 대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와 내 것이란 개념이 나오고, 다른 모든 악이 거기서 나옵니다. 불교사상에 따르면 사물은 관습적으로 명칭에 의해 존재할 뿐입니다. 제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리나 원인과 조건에 따라 존재할 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절대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합니다. 우리의 본질적인 존재는 텅 비어 있습니다[空]. 근접에서 보면 볼수록 우리는 희미해지고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접할수록 확대되고 마침내 대상은 작은 알갱이 조각들로, 미세한 부분들과 입자로 희미해져 버립니다. 사진의 연금술은 불가사의하고 불안정합니다. 깨지기 쉽고 비현실적이며 유유부하여 바람에 날리는 연기와 같이 알갱이의 구성들이 옮겨 다니고, 그러다 단지 존재한다는 환상으로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출현합니다.

 

프리팅 과정의 백금이나 은 같은 정제된 금속은 아무래도 생각들보다는 아주 작은 것들입니다. 다시 말해 생각과 느낌의 파편들입니다. 존재하길 소통하길 갈망하고,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모든 생각의 파편들입니다. 그런데 이미지란 꿈과 같습니다. 자신의 다른 지층과 대화하고 싶어하는 깊은 충동으로 가득차 있는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마그리트의 말을 인용하면 이들은 진짜 티베트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티베트 사람들의 사진, 더 정확히 말해 티베트 사람들에 대한 나의 느낌을 표현한 사진입니다.

 

어쨌든 빛과 백금과 은 알갱이의 연금술로 저는 사랑과 고마움의 마음을 맛뵈기로나마 표현했습니다. 그 사랑과 고마움은 모두 티베트 사람들이 제게 준 것으로 저는 평생 갚지 못할 것입니다. 강력한 수행법이 있습니다. 숨쉬면서 세상의 모든 중생, 특히 미워하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중생의 고통과 아픔을 검은 연기의 형태로 빨아들이는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검은 연기를 숨결에 실어 당신 심장으로 가져옵니다. 그러면 당시느이 순수한 마음의 놀라운 본성에 의해 고통의 검은 연기는 사랑과 자비로 바뀝니다. 그러면 그걸 모든 곳에 모든 중생을 완전히 충만시킬 치유의 감로와 광명을 채워 우주를 향해 내쉽니다. 모든 중생들이, 특히 티베트의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항상 위대한 승리자 붓다의 가호를 받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속히 행복을 성취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한 선업(善業) 짓기를 기원합니다.

 

창조자 없이.... 의미 없이.... 금강(金剛).... 마음.... 열린.... 가슴.... 빛....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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