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있는 내내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 이어졌다. 어떤 날은 창문을 스치고 지나가는 거센 소리에 새벽잠을 깨기도 했다. 삼다도에서 바람만은 기세가 여전한 것 같다. 딱 하루 송악산과 용머리해안에 간 날은 해가 나고 바람도 잦아들어 따스했다. 여행은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송악산 분화구는 출입이 금지되었고, 대신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길이 잘 만들어졌다. 길이가 2.8km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해안 산책로다.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이 아닌가 싶다.
송악(松岳)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옛날에는 소나무가 많았던가 보다. 지금은 일부에만 소나무 숲이 남아 있다.
썰물이 되어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느라 한 시간여를 대기했다가 용머리해안에 입장했다. 그동안은 물때를 맞추지 못해 들어가 보지를 못한 곳이다. 용머리해안은 퇴적과 해식 지형의 전형적인 모습의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용머리해안은 마치 용의 머리처럼 바다로 불쑥 튀어 나왔다. 옆 해안선과 비교하면 완연히 다르다. 화산재가 쌓인 퇴적 지층인데 바닷물의 침식작용으로 절벽을 이루었다. 느린 융기와 바닷물의 상호작용이 경탄스러운 조각 작품을 남겼다.
아득한 시간의 깊이를 인간이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제주도에 처음 발을 디딘 우리 선조와의 차이도 저 지층의 1cm 간격에도 미치지 못 할 것이다. 하물며 한 인간의 고뇌와 슬픔, 기쁨은 얼마나 찰나적이며 측량할 수 없게 가벼운 것인가. 철석이는 물결은 천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일하다.
마라도는 꼭 10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첫째에게 우리나라 최남단 섬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너무 관광지화 되어서 낯설게 느껴지는 섬, 모든 걸 날려버리려는 듯 바람 거센 날이었다.
제일 인상적인 풍경이 벌판 위에 웅크리듯 자리한 마라도 성당이다. 제일 명당 자리지만 아쉽게도 신자는 한 명도 없다.
그래도 전과 달라진 점은 문이 개방되어 있어 원하는 사람은 안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아내와 첫째는 성경 한 구절을 이어 적었다.
전에 비해 마라도가 더 상업화되었다. 숙박업소나 음식점이 서너 배는 늘어난 것 같다. 건물도 단정하지 못하고 지저분하다. 그나마 전동카트가 없어진 건 다행이다. 그때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길게 늘어선 전동카트의 호객행위가 불쾌했다.
마라도를 한 바퀴 돌며 이곳을 에너지 자립 마을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태양전지와 풍력발전으로 충분할 것 같다. 현재 주민은 백 명 가까이 된다. 대부분이 관광객 대상의 상업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숫자는 줄이고 해녀 중심의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거주하도록 지원책을 폈으면 좋겠다. 제주도의 특성을 보여주는 섬으로 탈바꿈되었으면 좋겠다. 짜장면이나 커피를 파는 건 아무래도 마라도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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