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너무 착하면 안 돼

샌. 2019. 12. 17. 16:22

초등학교 1학년 때 일화다. 길을 걸을 때는 좌측통행을 하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쳤다. 선생님한테 혼나니까 교실 복도에서는 누구나 그대로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개구쟁이들이 교문 밖으로 나오면 장난치느라 천방지축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학교와 집을 오갈 때 마을길이나 신작로 왼쪽으로만 고집스레 다녔다고 한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선생님 지시는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내 행동을 동네 사람들이 신기해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커서야 들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내 고지식한 성향도 마찬가지다.

 

자랄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을 어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어른들로부터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말썽부리지 않고 어른 말씀에 순종하고 고분고분하면 착하다고 한다. 원래 착하다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닐 것이다. 착함을 뜻하는 한자어 '선(善)'은 좀 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고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살피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단순히 말 잘 듣는 아이는 착한 게 아니라 얌전하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아이 때는 대개 착하다는 말로 통용된다.

 

손주가 여섯 살이다. 미운 네 살이니, 일곱 살이니 하지만 아직 손주는 예외다. 떼를 쓰거나 고집부리는 걸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눈에는 손주가 대견하고 귀엽기만 하다. 반면에 이쁨과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여서 안쓰러울 때도 있다. 어린아이지만 제 살아갈 길을 찾아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우리 OO는 왜 이렇게 착할까!" 할머니가 손주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손주도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기분 좋아한다. 아이에게 착하다는 말은 어른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어느 날 둘째가 제 자식에 대한 이런 찬사를 듣더니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너무 착하면 안 되는데."

 

착함은 결코 경계해야 할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어미 입장에서 자식이 마냥 착하기만 하면 걱정이 안 될 수 없을 것이. 세상살이에서 제 실속은 못 차리고 손해만 보며 살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착하다'는 '순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진다. 사람이 좋기만 해서야 냉혹한 현실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부모의 속마음은 착한 아이보다는 현실적이면서 조금은 영악한 면도 있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지 모른다.

 

착하다는 말은 차츰 사어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철이 들면 아이들도 착하다는 말 듣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깨들이 '차카게 살자'라고 문신을 하는 바람에 착함은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착하게 사는 사람은 '내 밥이야'라고 비꼬는 듯해 기분이 나빴다. 전두환 정권이 내건 '정의로운 사회'라는 구호에서 배운 게 아니었을까. 어느 단체는 대놓고 서울 시내 곳곳에 '착하게 살자'라는 글자를 큰 돌에 새겨 위압감을 주었다. 시민들을 훈계하는 그런 짓을 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착하게 살면 될 일이었다.

 

사람한테 놀림을 받고 기피를 당한 착함은 쓰임새가 엉뚱한 데로 옮겨갔다. 시장에 가면 '착한 가격'이라는 선전 문구가 자주 보인다. 가성비가 좋다는 의미인데, 착함마저 시장 경제가 흡수한 것 같아 씁쓸하다. 착하게 살면 도태된다는 염려, 그래도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 사이에서 나는 갈등한다.

 

노예 해방이 되었을 때 어느 착한(?) 노예는 주인의 옛정을 잊지 못하고 자유인이 되길 포기했다고 한다. 현대에도 자발적 노예의 길을 가는 사람 중에서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못된 세력에 이용만 당하는 착함이라면 경계해야 마땅하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주는 대로 받아먹는 착한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참 신앙인은 비판하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착하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냉철한 지성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착함의 본래 의미는 살아나지 못한다. 진(眞)과 미(美)와 함께 삼위일체로 어우러지는 선(善)일 때, 착함은 그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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