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중세 유럽인 이야기

샌. 2024. 1. 3. 11:15

학창 시절에 유럽의 중세는 '암흑시대(Dark Ages)'라고 배웠다. 지금도 중세라고 하면 제일 먼저 그 말이 떠오른다. 대략 서기 500년부터 1500년에 이르는 1천 년의 시간으로 봉건제와 미신에 가까운 종교가 인간 정신을 옭아맨 몽매의 시대라는 것이었다.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 시기가 되어서야 문화의 빛이 살아나고 서구 문명이 개화했다고 한다. <중세 유럽인 이야기>를 쓴 주경철 선생은 이런 선입견은 버리라고 말한다. 중세는 야만성과 함께 세련된 문화가 공존한 콘스라스트가 강한 시대였으며, 이 시대 사람들은 독특한 문명을 건설하여 후대에 물려준 총천연색의 화려한 중세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세 유럽인 이야기>는 중세를 살았던 여러 인물을 중심으로 중세의 속살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쉽고 재미있게 쓰여 있어 단숨에 읽었다.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바이킹의 시대(파괴와 교류, 혁신이 교차하는 변방의 다이내믹)

2부. 십자가와 왕관(성과 속의 뜨거운 경쟁과 새로운 발전)

3부. 권력, 사랑, 믿음(우리의 사고와 느낌을 초월하는 중세 스타일)

4부. 중세의 마음(불안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갈망)

5부. 근대를 향한 여정(냉혹한 권력과 예술의 향기)

 

중세의 큰 틀은 교권과 왕권의 대립 구도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 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싸움이 중세를 특징짓기 때문이다. 11세기에 일어난 '카노사의 굴욕' 사건이 대표적이다. 소년 십자군이나 신명(神明)재판 등을 보면 중세가 종교적 광기에 휩싸인 시기인 것은 맞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맹신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혼란한 시기는 14세기였다. 백년전쟁과 기근, 페스트로 전 유럽이 쑥대밭이 되었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른들 큰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지은이는 바이킹의 활약에 대해 책의 상당 분량을 할애하며 설명한다. 바이킹은 단순한 바다의 해적이 아니었다. 8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바이킹은 유럽 내륙 깊은 곳까지 진출하여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노르만왕조나 시칠리아왕국도 바이킹과 관련이 있다. 콜롬부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바이킹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시대의 패러다임 속에서 살아간다. 주어진 세계관으로 세계를 보고 인식할 뿐이다. 먼 미래의 인류가 오늘날의 우리를 본다면 21세기도 엄청난 야만의 시대였다고 평가할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삶의 스타일이나 사고방식이 우리 시대에나 통용되는 가치관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다. 엉뚱한 곳에 흥분하고 열광하긴 했지만, 지금의 우리가 그들과는 다르다고 큰소리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 지금의 나를 돌아볼 수 있다면 된다. 인간이 만든 제도나 사고방식의 기본 얼개는 중세나 현대나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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