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 3

천지가 다함이 있어도 시름은 다하지 않으니

"세계 평화를 위하여!" 젊었을 때 술자리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자주 외쳤던 말이다. 젊은 날의 치기였을 망정 그 시절에는 세계와 평화를 언급할 정도로 스케일이 컸다. 요즈음 젊은이들과는 달랐다는 말이다. 물론 이 시대의 젊은이를 비난하고 싶은 심정은 조금도 없다. 도리어 각박한 생존 경쟁의 장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린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고담준론이 먹여 살려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마저 공개적으로 '교육부가 경제부처이며 대학은 산업 인재 양성을 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이니 누구를 나무라겠는가. 7, 80년대에는 지금과는 성질이 다른 울분과 저항이 있었다. 그때는 대의(大義)를 논하고 이상을 좇던 시절이었다. 그럴수록 현실과의 괴리는 심해지고 지식인의 우울과 시름은 짙어졌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참살이의꿈 2022.06.28

나는 누구인가?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가 장발장의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독백이다. 그는 자베르 경감을 피해 신분 세탁을 하고 시장이 되어 살아간다. 그러다가 다른 데서 장발장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진짜 장발장이라고 고백하면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모든 것을 잃는다. 숨기면 시장직을 유지하며 잘 살 수는 있으나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된다. 양심의 갈등으로 번민할 때 그가 스스로 묻는 말이 이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는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자아 인식에 눈뜰 때 던지는 질문이다. 사춘기 열병의 원인도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 때문이다. 평생을 두고 고뇌해야 할 화두를 받는 것이다. 그것은 질문으로 주..

참살이의꿈 2013.04.09

숨 막히는 서울

비 내리지 않는 가을이 계속되고 있다. 또 도시의 매연이 안개와 겹친 스모그 현상도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도시의 시야는 수백 미터를 넘지 못하고 종일 뿌연 연무에 가려져 있다. 하루를 마치면 목이 칼칼하고 따갑다. 요사이는 최악의 가을 날씨다. 기상청 자료를 찾아보니 9월에 서울 지방에 내린 비의 양은 11mm, 10월은 고작 0.2mm에 불과했다. 그나마 5mm 이상 온 날은 하루도 없었다. 두 달 동안 제대로 된 비는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땅은 건조해져서 밟으면 먼지가 인다. 푸른 가을 하늘을 못 본지도 오랜 것 같다. 시원한 빗소리가 그립다. 숨 막히고 답답한 것이 꼭 매연 뿐이겠는가. 어제는 마음이 통하는 동료들과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정이 넘도록 토론했다. 술과 담..

사진속일상 2006.10.20